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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입은 시민과 진정한 보훈

입력
2020.06.25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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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122609(돌아오지 못한 122,609명 참전 호국 영웅을 기르는 캠페인)태극기 배지. 뉴스1

6.25 70주년 122609(돌아오지 못한 122,609명 참전 호국 영웅을 기르는 캠페인)태극기 배지. 뉴스1


어느덧 일흔 해다. 그러는 동안 전쟁에 대한 동질적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다. 70년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들도 조금씩 쇠락해져 마침내는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가게 만드는 긴 시간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의미를 증언해 줄 베테랑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누군가에게 전쟁은 먼 과거가 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6?25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일로 추억하기엔 수많은 세계 우방의 도움이 있었고 군과 민간을 포함한 사망자가 약137만명, 희생자 또한 수백만명에 이를 만큼 커다란 고난을 치렀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등장한 이래로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싸운 첫 사건이 바로 6?25일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어렵게 되찾은 국권을 다시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1950년 6월을 살아가던 청년들에게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때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나라가 이제 G11의 일원이 되려고 한다. 지금 누리는 풍요와 번영은 전적으로 70년 전 이날 군복을 입고 전장으로 달려 나갔던 선배 영웅들의 희생에 빚진 것이다. 국가는 그들을 ‘참전유공자’로 호명하고 이런저런 혜택을 주고 있지만 어쩐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목숨과 맞바꿔 나라를 살리려던 이들에게 월 32만원에 불과한 참전수당은 초라하기만 하다. 어쩌면 이 액수가 우리 사회의 제복 입은 시민들을 향한 존중과 예우의 수준을 나타내 주는지도 모른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이 가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그의 인생관을 나타내듯 국가가 예산을 어디에 쓰는지가 그 사회의 합의된 인식을 드러낸다. 공동체를 위해 건강과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쓴 돈은 너무 적다. 그나마도 유공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각종 서류와 절차는 너무 복잡하다. 내 동생은 청와대를 지키는 부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했다. 군에서 참혹한 사고를 당했지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과정은 너무나 험난했다. 지난한 심사 과정을 거치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은 점차 후회와 낙담으로 바래 간다.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제복 입은 시민들이다. 외부의 침략, 화재와 안전사고, 범죄로부터 동료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군인, 소방관, 경찰들의 헌신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인지라 왜 과오가 없겠느냐만 같은 잘못을 해도 그들은 더 혹독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을 약속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많은 예우와 존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도 말이다. 

국가는 법이 아닌 헌신으로 지켜진다. 스스로 안팎의 위협을 물리쳐야 지킬 수 있는 조직체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제일 좋겠지만 싸워서라도 지켜 내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자강과 자위는 제복 입은 시민들의 헌신으로만 가능하다. 미국인들은 군인, 경찰, 소방관에게 먼저 다가가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인사로 감사를 표한다. 그 짧은 인사말 속에 고스란히 담긴 나 대신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공동체의 안위를 지켜 주는 제복 입은 시민에 대한 존중과 예우에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복무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저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70년 전 전장에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갔던 젊은이들이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다음 세대에 그 공포와 아픔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전략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을지 모른다. 반복되는 역사가 보여주듯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훈이고 남겨진 자들의 역할이다. 보훈은 우리 모두의 빚이다. 오늘은 6ㆍ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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