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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라라가 된 손열음, 슈만의 사랑을 들려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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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라라가 된 손열음, 슈만의 사랑을 들려주다

입력
2020.06.24 04:30
수정
2020.06.24 20:4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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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 무대에서 손열음이 격정적으로 슈만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 무대에서 손열음이 격정적으로 슈만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재능과 애정의 함수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34)은 '잘 치면서', 동시에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에 속한다. 기교는 화려한데 감동은 없는 공연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가치를 알고있다.

23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은 음악'애호가' 손열음 스스로가 "가장 좋아하는 슈만의 곡들"로 엄선한 무대였다. 4년 만의 국내 독주회에서 손열음은 마치 슈만의 연인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에 빙의한 듯 신들린 연주를 보여줬다.

손열음은 첫곡으로 '아라베스크'를 내놨다. 곡의 제목처럼, 기하학적이면서 자잘한 아라비아 패턴의 반복이 연상되는 잔잔한 연주였다. 에피타이저를 지나 1부의 메인요리는 슈만의 '판타지(다장조)'. 슈만이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은밀한 연애편지'같은 곡이다. 손열음은 연주 중간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쉼표를 사용하며 감정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슈만의 고백이 절정에 달하는 2악장이 끝나자 객석으로부터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원래 하나의 곡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각 악장 사이에 박수를 삼가는 것이 관례다. 이날의 '결례'는 그만큼 손열음의 연주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단 뜻이다.

2부의 시작은 '어린이 정경'이었다. 슬하에 아홉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아이를 좋아했던 슈만의 부정(父情)이 담긴 작품이다. 13개에 이르는 다양한 선율의 래퍼토리가 연주됐다.

프로그램 마지막인 '크라이슬레리아나'는 공연의 백미였다. "세상에 있는 피아노 곡이라면 뭐든 다 쳐보고 싶었던 십대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손열음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 작품이다. 30여분에 이르는 이 곡은 불현듯 시작해서 수차례의 절정을 지나 갑자기 먹먹하게 끝난다. 그 여정 속엔 가녀린 속삭임부터 온몸이 떨릴 정도로 격정을 뿜어낸 손열음의 셈여림이 있었다.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 무대에서 손열음이 슈만의 곡을 연주한 뒤 관객들을 향해 밝게 웃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 무대에서 손열음이 슈만의 곡을 연주한 뒤 관객들을 향해 밝게 웃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1부에서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던 손열음은 2부에 와서 웨딩드레스를 닮은 순백의 드레스로 갈아 입었다. 드레스 만큼이나 무대에서 빛났던 것은 그의 웃음이었다. 손열음은 무대에 입장하면서, 또 각 곡이 끝나고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할 때마다 행복한 듯 활짝 웃어보였다. 가장 서고 싶었던 무대를 밟고 있다는 기쁨과 모든 감정을 쏟아낸 연주에 대한 만족감으로 보였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 아닌 '연주자' 손열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높은 대중성에 비해 손열음의 독주 공연은 2013년, 16년에 이어 이번이 겨우 세번째다. 당초 손열음은 지난달 중순 서울을 비롯해 전국 투어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세로 공연이 취소된 바 있다. 어렵사리 재개된 공연인 만큼 팬들의 기대는 컸고 손열음은 보란듯 화답했다.

손열음이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단지 차이콥스키 콩쿠르 준우승(2011) 타이틀을 쥐고 있다거나, 30대 예술감독으로서 굵직한 공연 기획력을 입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가는 관객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곤 했다. 손열음은 코로나19를 무릅쓰고 공연장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대신 손열음은 선물로 풍성한 앵콜 공연을 준비했다. 쇼팽의 '에튀드(25-7번)' 리스트의 '탄식' 브람스 '헝가리무곡(5번)' 드비쉬 '달빛'을 치다보니 앵콜 시간만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밤이 늦었으니)여기 너무 오래 계시면 안 될 것 같은데…"하면서도 결국은 "한 곡 더 쳐도 될까요?"하고 수줍게 묻는 손열음에게 환호하는 밤이었다. 

손열음의 리사이틀은 24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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