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를 향해 부는 외풍이 삭풍만큼 매섭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묘연한 행적 이후 쏟아져 나온 김여정 제1 부부장의 위협들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공세는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한때 ‘중재자’라 불렸던 문재인 대통령을 더 이상 그렇게 대우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속내가 드러나자 국민은 불안해졌다. 6월 들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내림세를 지속했고, 부정적인 평가는 수치가 40%대로 치솟았다. 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 여겨지던 남북관계 회복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진 결과가 가감 없이 반영되는 중이다. 조만간 북한의 대남전단을 가득 담은 풍선들이 ‘북풍’에 실려 남측으로 넘어오기 시작하고, 대남방송의 굉음이 접경지역을 뒤덮는다면 문재인 정부를 지탱해온 긍정적 민심의 기반은 더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외풍은 북쪽에서만 불어오진 않는다. 우방이며 경쟁자이고 대북 문제라는 실타래를 풀기 위한 협력자여야 할 국가들과 오랜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문재인 정부의 동력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연말 대선과 방위비 협상이라는 카드를 쥔 채 우리 정부를 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예상 외로 강하다. 사실 북한의 생떼에 가까운 위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인해 악화된 경제상황에서 빚어진 부분도 작지 않아 우리 정부로서는 전망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바람이었다. 반면 미국으로부터 불어오는 ‘동풍’은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어 대응이 쉽지 않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주한미군 철수 관련 메시지와 동맹의 가치를 현금으로 환산하는 계산법은 파트너십이 과연 무엇인지 미국에 되묻고 싶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출간이 예정됐던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또 어떤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그것도 현장에서 떨어져 있던 스피커의 책 한 권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동맹국의 노력을 농담거리로 전락시키는 동안 트럼프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과거사를 빌미 삼아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 경제를 1년 넘게 쥐락펴락하려던 일본의 ‘남동풍’도 거세긴 마찬가지다.
북풍을 비롯한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압도적이고 위험하다. 그러나 이로 인한 위기는 대체로 전 국민이 동의하는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우리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크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더 큰 바람은 우리 내부에 잠재된 수많은 갈등요소가 폭발하면서 불어 닥칠 수 있다.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수성전의 결과는 대체로 외부로부터의 적이 아닌 내적 갈등과 분열로 인해 판가름 났다. 공교롭게도 지금 신종 코로나와 맞서는 정부의 여러 모습은 이러한 위기의 내재성을 키우고 있어 우려된다. 가장 앞서 걱정되는 대목은 조타수가 가리키는 방향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 해소를 위해 국가 재정을 최대한 동원해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목소리에 모두 동조하는 듯하나, 기실 곳간 열쇠를 쥔 경제부총리는 살림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등록금 문제도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갈린다. 결국 ‘누가 더 신종 코로나로 피해를 봤는가, 누가 등록금을 환불받아 마땅한가’라는 질문은 더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방역 수위 관련 정부의 메시지가 선명하지 못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침과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도 속출하고 있다. 재난으로 표류하는 국민은 어느 출구로 향해야 생존할지 고민해야 한다. ‘남풍’에 실려 북측으로 향한 대북전단이 어떤 역풍을 불러올지 걱정되는 지금, 우리 내부로부터 일어날 바람이 두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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