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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쓴 얼굴 – 언택트 사회에서 얼굴 지키기

입력
2020.06.23 16:00
수정
2020.06.23 18:1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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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엄창섭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 연합뉴스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 연합뉴스


얼굴은 위로는 발제로부터 턱끝까지, 옆으로는 양쪽 귀 사이의 머리 앞면을 말한다. 발제는 이마 위의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는 경계선으로 그냥 헤어라인(hair line)이라 부르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해부학적으로 얼굴은 세 부분으로 나눈다. 발제로부터 눈알이 들어 있는 눈확의 위 가장자리까지를 위 얼굴이라 하고, 그 아래로 윗입술까지를 가운데 얼굴이라 한다. 그리고 아랫입술부터 턱끝까지를 아래 얼굴이라 한다. 그런데 각 부위의 대표적인 머리뼈를 기준으로 하면, 위 얼굴은 이마뼈, 가운데 얼굴은 위턱뼈, 아래 얼굴은 아래턱뼈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마뼈는 두 개 덮개뼈의 일종으로 뇌머리뼈라고 분류하고, 위턱뼈나 아래턱뼈는 얼굴머리뼈로 구분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머리뼈를 기준으로 하면 이마 부위인 위 얼굴은 사실 얼굴이 아니라 뇌를 보호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얼굴의 해부학적 특징은 눈, 귀, 코, 입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특수한 감각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옛 선배들은 이들이 표면에서 속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모두 굴이라고 보았는데, 굴마다 독특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 신이 있다고 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얼굴은 ‘얼’ 즉 ‘영혼’이나 ‘신(神)’이 있는 ‘굴(窟)’들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얼굴의 옛말은 얼골인데, 얼골은 얼꼴과 같은 것이어서 얼굴은 ‘얼의 꼴’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꼴’은 모습이나 모양을 의미하는 우리 말이다. 즉, 얼굴은 ‘영혼의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어느 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얼굴에 ‘얼’이 깃들여 있다고 본 것은 공통적인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는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 원래 성형수술은 기형이거나 다쳐서 손상된 몸의 부분을 정상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 알다시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까 성형을 통해 얻어지는 얼굴은 각 개인의 특성을 드러내는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되거나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나 개념을 반영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얼굴은 화장을 하거나 가면을 씀으로써 쉽게 얻을 수 있다. 하회탈을 쓰거나 가면을 쓰면 다른 신분 혹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변신하거나, 스스로의 본성을 숨기고 다른 사람인 척할 수 있다. 최근 복면가왕에 출연한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여러 사정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이런 가면이나 탈을 쓰고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것이 화장이라 생각한다. 화장을 함으로써 자신을 부정하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조선시대나 현대 이슬람국가에서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옷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한 부정의 표현으로 화장이나 가면을 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감염병 때문에 길거리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가운데 얼굴과 아래 얼굴을 가리듯 쓰는 것이 제대로 쓰는 방법이지만 얼굴은 그대로 노출시키고 턱 끝에 마스크를 쓴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은 코 아래에 걸쳐서 입만 가리고 있기도 하는 등 사람마다 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마스크를 이마에 올려쓰고 다니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비슷하게 보인다. 좀 과하게 이야기하면 모두가 비슷해 보여서 인간의 틀을 이용하여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틀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얼굴... 그 얼굴에는 각 개인의 개성이 숨겨져 있고 획일화된 전체만이 드러나 있다. 사람을 구분하는 틀, 과거 엄청난 집단 학살을 가져온 유대인이라는 틀, 비인간성의 상징인 노예라는 틀, 그리고 여러 전쟁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적이라는 틀, 현재도 과거 노예제도의 정신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미국이나 유럽을 휩쓸고 있는 흑인이라는 틀, 그리고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확진자라는 틀들은 모두 사람을 어떤 특징에 의해 획일화시키고 분류하는 데 사용된다. 

현재 우리 사회도 뉴 노멀, 언택트, 사회적 거리 두기... 이들은 모두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틀이다.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개인의 민감한 정보들이 활용되는 것에 둔감해지고, 개인보다는 전체가 더 앞서는 개념이 당연시된다. 사람들이 만나는 것보다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이 정상이라고 세뇌되고 있다. 네 얼굴은 네 자신이 아니니 마스크를 쓴 새롭게 만들어진 얼굴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받고 있다. 자신의 본래 얼굴을 잃어버리고, 새로 만들어진 우상의 얼굴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얼굴을 지배하는 얼의 자리를 나 개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 내어주게 될 지도 모른다. 이런 혼란의 시대일수록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잘 가꾸어야 할 때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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