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튼 회고록에서 찾은 남북미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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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튼 회고록에서 찾은 남북미의 실마리

입력
2020.06.23 16:00
수정
2020.06.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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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북한 비핵화 의지 회의적 시각                        북, 싱가포르 합의 불발 한국에 화풀이                        북미양자 납득가능한 로드맵구상 시급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019년 9월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하면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자료사진


최근 난폭한 북한의 행보가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연히 때맞춰 출간된 미국의 전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회고록은 몇 가지 실마리를 준다. 첫째, 북미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 존재하는 두 개의 노선 간 시각차가 생각보다 컸다는 것이다. 볼턴에 따르면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 및 국무부 관리들은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단계적 협상을 추구했지만, 백악관 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처음부터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 2019년 1월 말 비건 대표가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제시한 협상안은 백악관에서 철저히 무시되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협상 결렬을 중요한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었다(볼턴은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쓰고 있다). 주로 비건 대표의 협상노력에 귀를 기울여온 한국과 국제사회는 백악관의 내부 기류를 알기 어려웠다.

둘째, 핵 비확산을 중시하는 백악관 내 강경파들은 북한의 비핵화 진의를 회의적으로 단정하고 있었고 싱가포르 회담 이전부터 북미 정상회담을 좌초시키고자 했다. 북핵 문제를 오래 다루어 온 강경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과도한 경제적, 정치적 보상만을 제공할까 노심초사했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2018년 9월 1일을 시한으로 북한의 명백한 비핵화 조치가 없으면 미국의 상응조치를 유예할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었다.

셋째, 하노이 노딜은 당일 마이클 코언 청문회라는 정치적 변수가 있었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강경한 인식에 기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측근과 사전 상의 없이 북한에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연합훈련에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학습효과를 통해 북한의 명확한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해제와 같은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경제제재를 가중시키거나 김정은 위원장과의 개인적 관계를 파탄내지는 않지만 정책 면에서는 더욱 신중해진 것이다. 하노이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 스몰딜, 노딜을 두고 고민하였는데, 스몰딜은 미국 내 비판에 직면할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이미 수용하기 힘든 대안이었다. 하노이에서 확인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한 빅딜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노딜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비핵화 과정에 대한 인식과 의지에 의한 것으로 설명된다.

2018년 6월 13일 싱가포르 합의 다음 날 노동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단계적 접근에 합의하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이후 북한은 완전한 핵포기의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핵개발의 전모를 신고하지 않았으며 조선반도 비핵화 협상을 사실상 군축협상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하여 북한의 비핵화 선행동을 요구하고 있었고 비건 대표의 협상 노력은 김정은 위원장과 백악관 사이에서 불안하게 진동했을 뿐이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2년 넘게 움직이지 않는 미국을 보면서 북한은 울분을 쌓았을 테고 화풀이는 지금 한국을 향하고 있다.

볼턴 회고록에서 흥미로운 점은 용어들이다. 볼턴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통일(reunification)” 어젠다라고 일컫고 있고,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를 정치적 보장(political assurance)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단계적 접근을 행동 대 행동 책략(action for action ploy)이라고 쓰고 있다. 부정확하거나 6자 회담 당시의 낡은 것들이다. 그간 한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궁리했던 접근법들, 즉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접근,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 평화 프로세스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보다 더 상세한 이해를 하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미 간 디테일이 공유되어도 대북 공조가 어려울 텐데 그간의 거리가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신행정부와 북한 간 치열한 비핵화 협상이 예상되는 지금 북미 양자가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로드맵을 새롭게 구상하는 것이 한국이 운전사석을 되찾는 일이 될 것이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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