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도심의 북한 대사관. 직원 사택까지 들어선 대사관 부지는 꽤 넓어 보였다. 도로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은 오가는 행인조차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다리 건너 뒤편 고층 건물들을 배경 삼은 낡은 녹색 본관 건물이 적막했다. 1시간가량 둘러봤지만 인적은 없고 인공기만 바람에 나부꼈다.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이르판(34)씨는 "이곳에서 자주 버스를 타지만 사람이 드나드는 걸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정문 앞 안내판은 최근 남북 관계를 상징하듯 달라져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안내판 상단을 장식했던 관련 사진 3장이 모두 바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담소를 나누거나 함께 찍은 기념 사진은 자취를 감췄다. 이날 확인한 안내판엔 왼쪽부터 김 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한 모습, 집무실에서 발언하는 장면, 학교를 방문한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김 위원장만 부각시킨 것이다.
반면 2018년엔 중앙의 김 위원장 사진 양 옆으로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얘기를 나누는 1차 북미 정상회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부부의 기념 촬영 사진이 걸렸다. 지난해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평양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남북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 양측 정상 부부가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 안내판을 장식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볼품없는 안내판이지만 지난해까지는 적어도 북미 대화와 남북 화해 분위기를 북한 체제 홍보용으로 외부에 공개했던 셈이다. 한 교민은 "한국에서 온 친지와 함께 북한 대사관 안내판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남과 북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이어 지난해까지 체육 교류를 이어올 만큼 관계가 돈독했다. 작년 6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피스컵' 국제배구대회에는 남북 남녀 팀이 나란히 출전했다. 특히 6ㆍ25전쟁 69주년에 열린 남북 대결에는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학생 140여명과 한인 동포, 인도네시아인 30여명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는 하나다" 구호 아래 남북을 동시 응원했다. 당시 깜짝 방문한 안광일 북한 대사는 "아시안게임에 이어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남북이 함께 뛰는 모습을 통해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가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다던 2회 대회는 흐지부지됐다.
간간이 눈에 띄던 북한 사람들도 올해 들어선 보기 힘들다는 게 교민들 얘기다. 자카르타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교민은 "단골손님처럼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오던 북한 대사관 직원 아내도 발길을 끊었다"고 말했다. 올 2월 북한에 들어간 일부 대사관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출국이 취소돼 현재 가족만 자카르타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북한과는 1964년, 우리나라와는 1973년 외교 관계를 맺은 오랜 우방이다. 18일 한국일보 등 각국 특파원 대상 화상 회견에서 북한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입장이 뭐냐는 질문이 나왔다. 레트노 마르수디 외교부 장관은 "인도네시아는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을 강조하고 있으며 양국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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