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일파만파를 낳고 있다. 미국 내 논란은 차치하고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회고록 내용 중 북미 회담이나 한미 정상간 대화와 관련한 대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볼턴은 기대를 모았던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싱가포르 회담은 한국 정부의 제의로 시작된 것이고, 하노이 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 등의 의제를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의 전반적인 뉘앙스는 자신이 우려했던 북미 협상 방향이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잘못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의 북미 협상 관련 내용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그가 북미 회담 등에 깊숙이 관련했기 때문에 사실에 근접한 내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볼턴 전 보좌관이 백악관 일을 맡기 전부터 북한 폭격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극단적 매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회고를 액면 그대로 믿기도 힘들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22일 볼턴 회고록을 두고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 실장은 무엇보다 “정부 간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북미, 한미, 남북 간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자신의 대북 강경 주장이 관철되지 않은 데 심각한 불만을 표출했지만 그 주장이 이행되었다고 한반도 문제가 원만히 풀렸으리라 짐작하기도 어렵다. 볼턴이 대변하는 워싱턴 매파의 이른바 전쟁 불사론은 자칫 유사 상황시 남북 한반도 주민의 엄청난 희생을 담보로 한 모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볼턴 회고록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첫 단추라고 할 북미 대화를 둘러싸고 그동안 미국 내 혼란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고록에 공개된 ‘팩트’가 진실이라면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다분히 즉흥적이고 경제적인 이해타산에 치우친 것이다. 국내 일부 보수 언론이 이를 문재인 정부를 헐뜯는 소재로 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결국 남북 대화는 물론이고 북미 협상까지 우리 정부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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