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지식으로 자라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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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지식으로 자라나기 위하여

입력
2020.06.22 16:00
수정
2020.06.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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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김수영철학박사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게티이미지뱅크


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 부른다. 사람을 뜻하는 'homo'와 맛보고 분별하며 판단한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sapio'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을 단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새기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사피엔스 sapiens는 현재분사형태로서 그 동사적 의미가 분명하게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 지혜와 마주쳐서 그것을 소유하게 된 사람을 일컫지 않는다. 그는 자신 안에 올바른 분별이 있는지 없는지 항상 반성적으로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분별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니라 분별을 위해 몰두하는 자이며, 지식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지식을 찾는 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형이상학'은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지식을 추구한다"라는 언명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지식을 찾아 여기까지 왔으며 또 지식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일은 지식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인간학과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뒤섞으며 복잡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조금 참으며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식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지식과 정보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보면 금세 이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정보의 축적은 지식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그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여러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지식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만 여기에 무엇인가가 더해져야 한다. 그것은 비유컨대 벽돌들을 쌓아놓는다고 집이 되지 않는 이치와 비슷하다. 정보와 지식이 어떻게 다른가의 질문은 그러니까 벽돌 무더기와 집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과 같다. 

정보와 지식 사이에는 어떤 간극 혹은 도약이 있는 셈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깨닫고 외쳤던 "유레카"는 모든 지식이 뽐내는 어떤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유레카가 없는 지식은 없다. 만일 편안하고 부드럽게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정말로 알게 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지식은 불연속성을 동반한다. 지식은 새로운 연결, 낯선 통찰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지식의 창조를 위해서는 얼핏 생각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 첫째로는 필요한 만큼의 정보가 집적되어야 한다. 둘째, 이 정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는 어떤 불연속적인 순간이 있어야 한다. 셋째 이 새로운 연결을 위해서 정보들의 무수한 부딪침이 있어야 한다. 넷째 이 새로운 부딪침이 현실화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행히 이런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지식의 창출을 위한 최적의 매체, 그리고 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바 있다. 그 매체의 이름은 책이며, 그 환경의 이름은 도서관과 서점이다. 

책은 전통적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집적해온 매체이다. 그래서 책은 그 소비를 위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요구한다. 책을 한 권 들면 그다음에는 대개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거기에 투자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얼마든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끝까지 앉아서 결말까지 확인하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최근에 다양한 소셜 미디어가 우리의 정보 소비를 압도하게 되면서 책과 경쟁의 관계에 놓이고 있다. 우리는 여러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식의 생성에 요구되는 불연속적인 충돌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내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 소셜 미디어에서 연속성의 알고리즘에 따라 나에게 유사한 세계를 지속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몇 시간 동안 소셜 미디어의 바다에서 흥미진진한 글들을 읽고 소통하면서 지적 모험을 즐기는 듯하지만, 결국 거실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을 돌리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정보의 단순한 소비에서 다양한 불연속적 충돌을 통한 지식의 형성으로 나아가려면 책을 붙잡고 시간을 투자하면서 씨름하는 일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책'이 아니라 '책들'이다. 도서관과 서점은 여러 저자와 텍스트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이 노래하는 공간이다. 순서대로 무대에 나와 솔로 곡을 목청껏 부르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 있는 목소리로 아름다운 합창을 부르는 곳이다. 거기에서 지식이 솟아난다. 그 공간을 우리 모두는 견고하게 지켜내야 한다. 거기서 우리의 모든 지식이 배태되기 때문이다. 지식을 찾는 호모 사피엔스의 거주지는 도서관과 서점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김수영 철학박사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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