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지난 17일 문재인 정부의 22번째 주택시장 안정 대책이 나왔다. 조정 대상 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대전 청주까지 확대하고,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규제 강화 등 단골 대책이 또 동원됐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상 최저금리 시대에 대출 규제는 서민이 저렴한 대출을 이용할 기회만 빼앗을 뿐, 다주택자에게는 별 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를 찬성해온 정의당 심상정 대표마저 “투기 세력을 잡긴커녕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마저 가로막지 않을까 걱정”이라 논평했다.
□ 무주택 서민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거의 남지 않은 ‘내집 마련 통로’마저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 집값의 70%까지 오르던 2016년 전후로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산 후 5, 6년간 반환할 전세금을 모아 내집에 입성하는’ 이른바 갭투자가 무주택자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아무리 저축해도 집값 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내집 마련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투기 세력’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 여러 채의 집을 사들이며 집값 상승의 주 요인이 됐다.
□ 갭투자의 본격 등장은 2014년 2월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을 주며 여러 채 주택 구입을 권장하면서부터다. 이런 다주택자 우대 정책은 현 정부 초기까지 계속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12월 정부 정책 홍보 영상에 출연해 “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하시게 되면 저희가 세제라든가 금융이라든가 이런 혜택을 드립니다”라며 임대사업 활성화에 앞장섰다. 박근혜ㆍ문재인 정부에 걸친 임대사업자 육성정책의 영향으로 2006년 이후 계속 감소하던 주택 건축 투자는 2013년부터 상승세로 전환해 2018년까지 이어졌다.
□ 사사건건 대립하는 양대 정당이 왜 정권만 잡으면 모두 주택 경기를 되살리려 할까. 추락하는 경제성장률을 임기 내 되돌릴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거품 붕괴의 위험성은 알지만, 임기 내에만 안 일어나면 된다. 정권의 이런 속사정을 잘 아는 투기세력은 22번이 아니라, 220번의 대책이 나와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진심으로 부동산 안정 대책을 마련하려 한다면, 방법은 분명하다.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 통로는 열어둔 채, 투기세력의 이익에 정확히 과세하는 것이다. 우선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부터 없애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