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시민단체가 떼어 땅에 버려
“더 이상 미룰수 없다” 해결 의지 드러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의 현판을 경기 포천시장이 자신의 집무실에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손에 뜯겨나간 뒤 포천시가 “되찾아 시청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 물건으로, 2년 만에 시장실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21일 포천시에 따르면 ‘전두환 기념비’ 하단부에 설치됐던 녹색 현판이 이달 초 시장 집무실 책상 뒤편으로 옮겨졌다. 박윤국 시장이 “전두환 기념비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현판을 가장 눈에 잘 띄는 시장실에 놓도록 한 것이다.
현지에서 ‘전두환 찬양 기념비’로 불리는 비석은 의정부와 포천을 잇는 국도 43호선 축석고개 입구에 서 있다. 높이 5m, 폭 2m 크기로 한눈에 띈다. 1987년 12월 10일 국도 43호선(25.8㎞) 완공 기념으로 세워졌다.
기념비 하단 앞ㆍ뒤에 가로 1m, 길이 70㎝ 크기로 붙어 있던 현판이 시장실에 자리를 잡은 사연은 지난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는 국도 43호선 포천 초입에 설치된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전두환의 친필로 ‘護國路(호국로)’가 새겨진 비석이 ‘전두환 공덕비’라는 게 이유였다.
흥분한 회원들은 “민주주의의 수치”라며 기념비 철거를 요구하면서 기념비에 붙은 현판 2개를 뜯어냈고, 흙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특히,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서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고 적힌 문구를 문제 삼았다.
30년 넘게 길가에 있던 현판이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을 입수한 포천시는 현판을 수거해 갔다. 원래 자리에 다시 설치할 수는 없어 시청 창고에 보관했다. 세상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가 싶었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5ㆍ18 민주화운동 40주년인 올해 발포 명령의 책임이 전씨에게 있다는 증언과 자료가 속속 나오면서 전두환 찬양 기념비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진 것이다. ‘호국로’ 비석이 전두환 흔적 지우기 대상지 중 한 곳으로 지목되면서 조용하던 포천이 시끄러워졌다. 이명원 민중당 포천시위원장은 “범죄자의 뜻을 후세에 전하라는 것이냐”며 “광주학살 범죄를 일으킨 군사독재의 잔재인 ‘전두환 공덕비’는 즉각 철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천시가 기념비 문제를 도외시 해온 것은 아니다. 이전을 추진했지만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예산 문제가 컸지만, 당시 일각에서 “불행한 역사도 역사”라고 주장, 이전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논란이 가열되자 포천시는 전두환 공덕비를 그대로 두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비석을 없애든지 옮기든지,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기념비 철거 문제를 비롯해 전 전 대통령이 명명했다는 호국로 도로명 변경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시정조정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려 처리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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