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임주희의 건반노트] 아홉살, 독일 하이든 콘체르토 연주 뒤에 숨겨진 인연

알림

[임주희의 건반노트] 아홉살, 독일 하이든 콘체르토 연주 뒤에 숨겨진 인연

입력
2020.06.21 14:00
수정
2020.06.22 06:39
21면
0 0

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2010년 독일 라인가우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임주희(가운데)가 공연 지휘자(왼쪽)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주희 제공

2010년 독일 라인가우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임주희(가운데)가 공연 지휘자(왼쪽)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주희 제공


딱 10년 전인 2010년 6월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열살이던 나는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초대로 러시아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소년한국일보에 기사가 났고, 학교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다.

한국일보를 통해 10년만에 만난 독자들과 내 음악인생에서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 좋은 곡, 좋은 연주에 대한 정보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피아노 연주법, 피아노 전공을 위해 음악도가 거쳐야 할 과정 같은 얘기는 이제 인터넷만 열심히 검색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시대다.

독일 라인가우에서 피아노를 빌려준 한국인 부부(맨 왼쪽, 오른쪽)와 임주희(가운데). 임주희 제공

독일 라인가우에서 피아노를 빌려준 한국인 부부(맨 왼쪽, 오른쪽)와 임주희(가운데). 임주희 제공


내가 하고픈 얘기는, 어린 나이임에도 감히 ‘인연’이다. 

첫번째 인연은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 이야기이다. 음악인생에서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가 무슨 인연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2010년 6월 러시아 공연을 마치고 8월 라인가우 뮤직페스티벌의 초청으로 독일로 갔다. 연주 4일전 부모님과 함께 독일에 도착해 조금 여유있게 준비하려던 계획은 도착당일 처참하게 부서졌다.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은 와인 축제로 유명한 라인가우성에서 열리는데, 피아노가 성에만 있다는 사실을 우리만 몰랐다. 자기 악기를 챙겨온 다른 연주자들은 각자 연습에 몰두하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얼른 시내로 나갔다. 어떻게든 연습실을 찾아야 했다. 연주 전까지 이대로 있으면 손가락이 모두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땡볕 아래 반나절을 헤매다 물을 사러 들린 슈퍼에서 기적적으로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오셔서 이제는 그곳에서 노년을 준비하시는 분들이었다. 두 분의 배려로 그날부터 댁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피아노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다락 위에 있는 조그만 피아노였건만, 그 어느 무대 위 피아노보다도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주었다. 두 분은 남은 3일 동안, 하루 종일 연습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고 마지막 날엔 아예 집 열쇠를 우리에게 주셨다. 어느 누가 한번도 본적 없는 가족에게 집열쇠를 맡길 수 있을까.

지금 내 유튜브 계정에 올라있는 하이든 콘체르토는 그런 과정의 산물이다. 그 뒤 내 마음 속 하이든 콘체르토는 언제나 그분들과 함께 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인연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찾는다고 나를 찾아오는 친구가 아니다. 준비가 되어있는 나에게 찾아오는 선물 같은 존재다. 

7월 3일 광주 금호아트홀, 7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임주희가 연주하는 임주희’라는 타이틀로 독주회를 연다. 관객들은 나를 통해 쇼팽, 베토벤, 카롤 베파가 나에게 헌정한 곡들을 만날 것이다. 나는 청중들이 내가 아닌 이 작곡가들의 곡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청중들이 나를 통해 그 곡들과 인연을 맺는 것이 아닐까? 

즐겨보는 TV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 출연자들은 촬영이 끝난 뒤 음식 냄새가 밴 옷을 입은 채 집에 가려 한다. 옷에 밴 음식냄새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내 연주도 그런 진한 여운을 가지길 바란다. 너무 향기로워서 그 향이 사라지는 것을 청중들이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피아니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


임주희 피아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