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 대회에선 선수들이 특정 홀을 지날 때면 관중의 힘찬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관중 입장을 허용한 건 분명히 아닌데, 선수들이 지나갈 때면 이름까지 호명하며 "굿 샷!" "나이스 퍼트!"을 외치는 소리가 4라운드 내내 중계방송에 고스란히 담겼다.
기아한국여자오픈 최종일인 21일 4번홀 그린 바로 앞에 위치한 집 발코니엔 입주민 10명이 모여 앉아 치킨과 맥주, 과일 등을 나눠먹으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응원단의 정체는 대회장인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 내 타운하우스 '청라 더카운티 웨스트 2차' 입주민들. 타운하우스가 베어즈베스트 청라GC 미국코스 내에 조성된 터라 평소에도 골프장을 바라보며 살던 이들은, 이번 대회가 무관중 대회로 치러지면서 뜻밖의 특혜를 누리게 된 셈이다.
한 주민은 망원경을 들고 선수들을 지켜봤고, 또 다른 주민은 카메라로 선수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날 만난 주민 손정희(62)씨는 "이 집이 여러 홀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입주민들이 이 곳으로 모였다"며 "정작 집 주인은 오전에 교회에 간 상태라 빈 집에 모여 먹고 노는 셈"이라며 웃었다. 주민간 인심도 우애도 그만큼 크단 얘기다.
주민 대다수가 평소에도 골프를 즐기는 편이라 관전 매너도 철저히 지킨다. 휴대폰은 모두 진동으로 전환하고, 과도한 음주는 피하고, TV볼륨도 최소화하는 등 나름대로의 규칙도 있다. 4번홀에서 선수들이 퍼팅을 할 때면 작은 대화도 중단하고, 퍼팅을 끝내면 선수 이름을 외치며 큰 박수를 쳐준다. 손씨는 "선수들도 4번홀을 나설 때면 주민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거나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전했다"며 "특히 집 주인이 좋아해 옥상에 응원 현수막까지 붙인 유소연(30)과 정수빈(19)은 이 곳을 지날 때마다 허리숙여 인사하고 갔다"고 했다.
선수들도 실제 주민들의 '발코니 1열 응원'을 무척 반가워했다. 무관중 대회라 연습경기와 다를 게 없어 아쉬웠는데, 일부 홀에서라도 응원소리가 들려 활력이 됐다는 게 선수들 얘기다. 이번 대회 우승자 유소연은 우승기자회견에서 "대회장이 조용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회장 내에 집이 있는 골프장 특성상 주민들이 많은 응원을 해 주셔서 더 힘이 났던 것 같다"며 "기대하지 않았던 응원을 해주신 거주자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주민들은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진정돼 갤러리들과 호흡 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손씨는 "집에서 편안하게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지만, 그래도 관중을 받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사인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게 아쉽다"며 "대회장에 관중으로 들어설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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