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업일수가 4월에는 고작 6일, 5월에는 9일이었습니다.”
인천의 자동차 1차 협력업체 A사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매출은 평소 대비 85%가량 급감했다고 한다.
2,3차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A사와 거래하는 2차 협력업체는 약 30곳. 이 대표는 “2차 협력업체 사이에서 ‘두 달을 못 버틸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한 탓인데, 부품업체가 도산하면 완성차업체 생산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결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업체인 명보산업은 최근 경영난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공장 가동을 멈췄다. 명보산업은 팰리세이드 싼타페 투싼 넥쏘 등에 들어가는 시트 백커버와 퓨즈박스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명보산업이 부품 공급을 중단하면서 현대차의 생산 차질도 불가피해졌다. 이미 전날인 18일 오후부터 팰리세이드와 투싼용 부품 재고가 바닥나 차량 출고를 못하고 있다. 싼타페와 넥쏘용 부품은 조금 여유가 있지만 이 사태가 며칠 더 지속되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명보산업처럼 벼랑 끝에 몰린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적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산 부품 ‘와이어링 하네스’ 부족으로 국내 완성차업체 5곳이 올스톱했던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부품업계 경영난은 3월 이후 북미와 유럽 등으로 코로나19가 퍼져 ‘수출 절벽’ 사태가 빚어지며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다.
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달 중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부품업체의 공장 가동률은 30%대에 불과했다. 3월 실태조사 때는 60%대였으니 두 달 만에 ‘반토막’ 난 것이다. 매출액 감소율도 3월 10~25%에서 5월 20~60%로 확대됐다. 국내 자동차 1차 협력업체는 약 800개, 2~3차 협력업체는 약 8,000개로 추산된다.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연관업체가 수 만개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영세업체들의 폐업이 전체 부품업계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정부도 자동차 부품업계의 위기를 인지하고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이날 중ㆍ저 신용등급의 자동차 협력업체에 2조원+α(알파)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다.
우선 정부, 지방자치단체, 완성차업체가 출연하는 2,700억원을 재원으로 신용도가 취약한 자동차부품 중소ㆍ중견기업에 회사당 최대 70억원의 대출을 보증해준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완성차업체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부품업체에 대해선 완성체업체와 신용보증기금이 공동으로 총 3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제공하고, 완성차업체(1,000억원)와 정책금융기관(2,500억원)이 펀드를 조성해 중ㆍ저신용 업체에 우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자동차 협력업체는 캠코가 제공하는 ‘납품대금 담보 대출’, 최대 100억원을 우대금리로 빌릴 수 있는 산업은행의 ‘주력산업 협력업체 대출’도 이용할 수 있다.
업계에선 이러한 지원이 당분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연구원의 지난 4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 부품업계가 필요로 하는 운전ㆍ시설 자금 규모는 10조원 안팎에 달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품업계 경영난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원샷’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업체들의 경영 상황을 보면서 적재적소에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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