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아파트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뒤 제3자에게 이중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것이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종전에 이 같은 이중 저당을 배임죄로 본 판례도 모두 변경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모(47)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2016년 6월 A씨에게 18억원을 빌리면서 배우자와 공동 소유한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정했다. 그러나 6개월 뒤 이씨는 채권최고액 12억원인 4순위 근저당권을 B사 명의로 설정했다. 검찰은 이씨를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원심은 "아파트 시가와 피해자의 채권액 등을 고려하면 이씨가 배임으로 얻은 재산상 이익은 12억원"이라면서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저질러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을 때 성립된다.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해주는 행위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무자의 저당권설정 의무는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의무"라면서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앞서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는 전제 하에 이중 담보 설정이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본 대법원 판결들은 모두 바뀌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타인의 사무를 엄격히 해석해 종래 판결을 변경했다"면서 "국가 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사적 자치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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