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내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긴급 기자회견.
비대위 집행부인 정기섭 위원장과 김학권 고문 등 입주 기업 대표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전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이 다음 수순으로 개성공단을 철거할 거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면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앞선 4일 발표한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남측의 조치를 요구하면서 △연락사무소 폐쇄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했다. 실제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 총참모부는 철수했던 비무장지대 초소에 다시 진출하고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군부대를 전개할 거란 입장까지 내놓으면서 남북 관계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2018년 4ㆍ27 판문점선언 이후 지난 2년의 시간이 ‘희망고문’이나 다름없었다고 토로한다. 남북 정상이 만나며 품었던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절망이 돼 거대한 ‘쓰나미’처럼 이들을 덮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급기야 이제는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국내 기업은 약 120곳이다.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입주 기업들이 그곳에 남겨두고 온 자산만 9,000억원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기계설비를 비롯한 고정자산과 완제품 등을 고려한 규모다. 여기에 투자금액까지 합하면 손실액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 등을 통해 정부에서 지원한 금액은 5,000억원 정도다. 이대로면 나머지 손실액은 입주 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비대위는 이날 “개성공단은 남북 주민들의 땀과 열정, 민족정신이 서린 곳”이라며 “개성기업인들의 사업의지를 꺾지 말아달라”고 북측에 호소했다. 또한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중 어느 것 하나 이행이 안 되는 바람에 남측에 대해 신뢰가 깨지고 분노한 상태에서 전단은 하나의 기폭제가 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정상 간 공동선언의 내용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 뒷짐만 지고 있으면 입주 기업들의 호소는 지금까지처럼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2년 넘게 이어진 ‘희망고문’의 굴레에서 이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책임이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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