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북구에서 봉제업체를 30여 년 동안 운영해 온 김모씨는 지난 2월 가장 힘든 ‘보릿고개’를 겪었다. 1월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뚝 끊겨 직원 월급 주는 일부터 막막했다. 모든 게 멈췄던 가게에서 김씨는 3월에 다시 재봉틀을 돌릴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필터교체형 면 마스크 대량 생산 주문이 들어온 덕분이었다. 성북구가 강서구와 손잡고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에 마스크 30만장 제작 의뢰를 해 문을 닫을 뻔했던 김씨같은 중소 봉제업체 사장들이 한숨을 돌린 것이다. 김씨는 “3월이 일감이 많은 시기였는데 코로나19로 손을 놓고 있어 참담했다”며 “그러던 와중에 가뭄에 단비처럼 마스크 제작 의뢰가 들어와 다시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패션봉제협회가 마스크 1만장을 제작해 기부에 나섰다. 오병렬 서울패션협회장은 17일 서울 성북구청을 찾아 에르신 에르친 주한 터키 대사에 마스크 1만장을 직접 전달했다. 이날 본보와 만난 오 회장은 “성북구가 주축이 돼 진행한 공공 마스크 제작 프로젝트로 가게 운영에 숨통을 트인 봉제업체들이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코로나19로 힘든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뜻을 모았다”며 “구와 의논해 터키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자치구의 작은 지원이 국경을 넘은 나눔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귀하게 만든 마스크를 어디에 기부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 70년 전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형제의 나라 터키를 기부처로 추천했다”며 터키를 기부처로 택한 배경을 들려줬다.
봉제업체들은 영세했지만 이들의 ‘통’은 컸다. 필터교체가 필요 없는 항균 기능을 갖춘 고급 원단을 직접 구해 기부 마스크를 만들었다. 터키 문화원을 찾아 응원 문구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시민이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합니다’란 뜻의 터키어를 포장지에 새기기도 했다.
에르친 터키 대사는 “지금은 확진자가 줄고 있지만 터키에서 누적 확진자는 10만명을 넘었다”며 “마스크를 터키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에 먼저 나눠줄 것”이라고 말했다. 에르친 터키 대사는 오 회장에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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