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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유족 특별채용 “약자에 대한 배려” vs “고용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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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유족 특별채용 “약자에 대한 배려” vs “고용 세습”

입력
2020.06.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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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격돌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산재 유족 특별채용규정은 채용의 자유 침해가 아닌 자유를 행사한 결과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연대의 관점에서 공정 개념에도 부합한다”(산재 유족 측)

“산재 유족이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고용세습조항이다. 채용의 자유와 계약 불체결 자유도 침해한다”(회사 측)

노동조합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자녀를 특별채용할 수 있게 한 단체협약을 두고 산재 유족과 사측이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격돌했다. 양측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규정이 채용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지, 다른 구직자의 기회를 얼마나 박탈하는지 등을 두고 첨예하게 부딪혔다.

이 사건은 1985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화학물질인 벤젠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하다 현대자동차로 전직,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0년 사망한 A씨 유족의 소송으로 시작됐다. 25년 전 현대ㆍ기아차 노사간 단체협약에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다면 직계가족 1인에 대해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유족은 이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지급하고 직계가족 1인을 채용하라고 청구했다.

1심과 2심은 특별채용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규정이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재 유족 특별채용은 사용자의 채용자유를 제한하고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하며, 산재 유족 생계보장은 금전지급 등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법원 논리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유족 측은 이날 “해당 규정은 노사간 협약을 통해 만들어진 자치의 결과로, 채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들고 나왔다. “노사는 산재 사망 시 민ㆍ형사 분쟁을 유족 1인에게 채용 기회를 주는 방법으로 해결해온 것”이라는 게 유족 측 변호인 지적이다. 유족 측은 또 “사측이 신규채용한 인원에 비해 산재 유족 채용인원은 0.5%도 되지 않는다”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라는 이익에 비교하면 침해되는 공정성은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단협 조항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만큼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사측 변호사는 “오래 전 맺은 협약 탓에 사회상이 변했음에도 결격사유가 없을 경우 산재 유족을 무조건 채용하면 ‘부모 찬스’를 용인했다는 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며 헌법 계약 체결의 자유에서 유래하는 불체결의 자유 등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또 “산재 유족 보호를 위해서는 금전보상 등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와 재계에서도 대법원 결정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의견을 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 규정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잃은 직원에 대해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채용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공정에 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산재 유족 특별채용을 인정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고용세습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취지로 의견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날 논의 내용을 토대로 산재 유족 특별채용규정이 유효한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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