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민요, 정가 같은 우리 전통 음악이 대중음악 영역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국악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국악 그 자체를 고스란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것의 세계화를 내걸고 퓨전, 크로스오버하는 게 아니라 ‘날 것’, ‘생짜’ 그대로의 국악을 전면에 내세운다. 굳이 요즘 입맛에 맞춰주지 않더라도, 국악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선두에는 베이시스트이자 영화음악감독인 장영규와 소리꾼 이희문이 있다. ‘씽씽’이란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던 두 사람은 국악 그 자체를 들이민다.
장영규는 ‘비빙’으로 불교음악을, ‘씽씽’으론 민요 록을 선보였다. 지난해 초에는 젊은 판소리 명창들과 함께 ‘이날치’라는 밴드를 결성, 최근 데뷔 앨범을 내놨다. 이들은 유난하게 국악임을 내세우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저 “조금 특별한 지금 시대의 댄스 음악을 한다”고 할 뿐이다. 아예 “우리가 하는 건 ‘얼터너티브 팝’ 장르”라고까지 한다. ‘국악 밴드’란 말 자체를 거부하는 셈이다.
이날치는 첫 앨범에서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를 일렉트로닉ㆍ팝ㆍ록 음악에다 덧댔다. 판소리 창은 살리면서 전통음악에는 없는 강력한 리듬감과 비트를 결합시켰다. 원래 판소리 보다는 조금 더 빨리 노래하고 싶어 일부 구절을 재배치하거나 반복하는 정도의 변화만을 줬을 뿐인데 새로운 힙합이, 록이, 댄스 음악이 나왔다. 장영규는 “판소리가 지닌 원형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악계 괴짜로 통하는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의 행보도 보통 아니다. 지난 1월 민요와 레게를 결합한 프로젝트 밴드 오방신과의 일원으로 ‘오방신(神)과’ 앨범을 냈다. 이번 달에는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함께한 ‘한국남자 2집’을 발매할 예정이다. 지난 2017년 발표한 ‘한국남자 1집’에서 우리 소리와 재즈를 합쳤다면, 이번 2집 앨범에선 재즈와 잡가의 공존을 시도했다. 그때 그때 노래 부르는 사람의 감정과 기교를 중시하는 잡가는, 마찬가지로 연주자의 즉흥성에 중점을 둔 비밥ㆍ하드밥 재즈와 잘 어울린다 생각해서다. 이희문은 “이렇게 자꾸 한데 뒤섞어야 새로운 일이, 새로운 음악이 발생하고, 그래야 이게 뭘까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 말했다.
시조, 가곡을 느릿하게 부르는 정가도 예외가 없다. 그룹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 베이시스트 송홍섭은 다음달 서울 장충동 국립공원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서 정가와 대중음악이 충돌하는 음악을 선보인다.
명창 강권순이 시조나 가곡을 부르면 송홍섭과 밴드는 대중음악을 연주한다. 밴드는 ‘이날치’처럼 리듬악기(베이스, 드럼) 위주에 기타 없이 건반악기만 추가한 독특한 편성이다. 박자와 화성이 전혀 다른 정가와 대중음악을 묘하게 어우러지게 만들기 위해 강권순 명창과 수년간 협업을 했다. 지난해 11월에 낸 앨범 ‘지뢰’는 그 결과물이다.
이런 혁신적 시도가 쏟아질 수 있는 건, 대중의 지지가 있어서다. ‘씽씽’은 지난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인기 프로그램인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 큰 화제를 모았다. 첫 앨범을 낸 ‘이날치’가 LG아트센터에서 진행한 공연은 코로나19 위험에도 거의 매진됐다. 이들의 음악과 공연을 접한 이들은 “이게 바로 진짜 K팝” “우리 음악이 이렇게 신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등의 열렬한 반응들이다.
국제음악축제 잔다리페스타의 공윤영 대표는 “세련된 서양 음악 위에다 우리 전통 소리를 얹은 음악에 대해 젊은이들은 물론, 해외 음악 관계자들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국악이나 전통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이들이 오히려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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