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리그2(2부리그) 최하위 서울이랜드 선수들은 1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이번 시즌 유력한 K리그1(1부리그) 승격 후보인 대전하나시티즌을 2-0으로 꺾은 뒤 정정용 감독을 헹가래쳤다. 선두를 찍은 것도 아니요, 엄청난 대승을 거둔 것도 아니지만 2연승 돌풍과 함께 홈경기 첫 승을 이끌어 준 데 대한 고마움에서다.
이날 헹가래 장면은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신화를 쓴 뒤 선수들부터 헹가래를 받은 1년 전과도 겹쳐진다. 지난 1년 사이 축구인생에서의 큰 도전을 택한 정 감독이 새로운 팀, 새로운 선수들로부터 큰 믿음을 얻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시간을 기준으로 2019 FIFA U-20 월드컵 결승전을 치른 지 정확히 1년이 흐른 16일, 서울이랜드 숙소인 경기 켄싱턴리조트 가평에서 만난 정 감독은 “1년 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단 1%도 생각하지 못했으니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면서 “아직도 시험대에 올라있는 상태지만, 지난해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정 감독은 “시즌 시작 전부터 선수들이 내 지도스타일을 잘 따라와주고 의욕도 높은데다, 자신이 가진 것을 100% 발휘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K리그2에서도 그리 좋은 전력을 가진 팀은 아님에도 결코 쉽게 지지 않는 팀이 된 이유”라면서 선수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사실 그가 서울이랜드 감독으로 전격 선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12월만 해도 “프로에서 쓴 맛을 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지난해 서울이랜드는 프로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36경기 가운데 단 5승을 거두며 ‘압도적 꼴찌’로 남았다.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팀은 정 감독 부임 후 180도 바뀌었다. 6경기를 치른 현재까지의 승점은 9점(2승3무1패)으로 중위권인 7위에 올라있지만, 1위 부천과 승점 차는 단 3점차다. 무엇보다 실점이 전남(2점), 부천(4점)에 이어 3번째로 적다. 여기에 최근 공격까지 살아나면서 성적이 급상승 중이다.
특히 최근 대전전 승리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K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의 용병으로 꼽히는 안드레 루이스(23)를 완벽히 틀어막았다. 정 감독은 “지난해 U-20 월드컵에서 함께한 (대전의)이지솔이 경기 후 전화해 ‘감독님 꼭 이겨보고 싶었는데 져서 분하다’고 털어놓더라”며 웃었다.
기분 좋은 나날이지만, 정 감독은 “자만심이 경계대상 1호”라고 했다. 그는 “(성적 상승에)탄력이 붙은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며 “우리 전력이 K리그2 구단들 가운데서도 좋은 편이 아닌 점을 선수들이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수들 기량을 지금보다 200%까지 높여주는 건 불가능하지만, 120%까지 올려놓아 선수와 팀이 함께 발전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팀 내에서 ‘스포츠 사이언스’를 강조한다. 정 감독은 “쉽게 설명하자면 공이 우리 선수 옆에 많도록 만들고, 선수가 컨디션을 빨리 회복해 공에 가까워지기 위해 또 뛰게 만드는 것을 체계화 하고 있다”고 했다. 지도자들끼리 자주 모이는 이유도 ‘체계화’ 때문이다. 정 감독은 “선수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을 때 감독과 코치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 선수들이 헷갈려 한다”며 “선수가 명확한 지시를 받아 쉽게 이해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지도자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말 취임 당시 “임기 3년 내 (FC서울과)서울 더비를 해보고 싶다”며 K리그1 승격 의지를 밝힌 바 있는데, 그 목표를 좀 더 당기기로 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코로나19로 경기수가 팀당 27경기로 감소한 점을 감안했다”며 “해가 갈수록 승격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 가능한 올해에 플레이오프까지 가서 승격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최근 급격한 하락세를 타는 FC서울을 향해선 “힘을 더 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가 머릿속에 그렸던 서울 더비 무대는 2부리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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