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대응 속 北에 ‘레드라인’ 넘지 말라 경고
대선 앞두고 한국 통해 ‘北 문제’ 관리하려는 듯
한국 정부의 대북 대응 운신 폭 넓어질 가능성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가 폭파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에 절제된 경고를 보내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간 남북 협력 과속을 경계해온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북한 악재’가 우려되자 남북관계 복원 우선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향후 대북 접근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한국일보 질의에 “미국은 남북관계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북한에 역효과를 낳는 추가 행위를 삼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조치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보내는 동시에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진전 노력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앞서 고위 당국자도 “동맹인 한국과 긴밀한 조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의 이날 공식 입장 발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최근 들어 ‘북한의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추라’는 요구가 사라진 가운데 한국 정부의 노력을 ‘전적으로(fully)’ 지지한다고 표현한 대목이다. 북한이 남북 연락채널을 차단한 지난 9일 “북한의 행보에 실망했다”는 논평에 ‘비핵화 진전’이란 단서를 달지 않았는데 이날은 한국 정부에 대한 지지의 수위도 한층 높인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그간 문재인 정부가 철도ㆍ도로 연결과 금강산관광ㆍ개성공단 재개 등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려 할 때마다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예외 없이 “비핵화 진전과 발맞춰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실제 미국은 한미 워킹그룹 등을 통해 남북 협력사업이 북한 비핵화 진전보다 앞서나가는 것을 견제했고 국내 진보진영에선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트럼프 정부의 입장 변화는 남북관계 파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데다 대선이 다가온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다 최근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까지 겹치면서 북한 문제에 전념할 여력이 없다는 점에서다. 주요 외교 치적으로 내세운 북미 정상회담 합의까지 무너지면 적잖은 정치적 공세에 시달릴 수도 있다. 최근 신간 출간을 놓고 백악관과 정면충돌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를 비판해온 대표적인 인사다. 한 외교 소식통은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를 두고 미국이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원점으로 되돌리기도 난감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로선 ‘북한 딜레마’를 풀기 위해 한국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대북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로선 운신의 폭을 넓혀 현 위기 상황의 돌파구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여건이 좋아지기만 기다릴 수 없다”면서 “남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NULL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