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누적 환자가 21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국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감염은 퍼지는데 병원을 찾는 국민은 오히려 크게 줄었다. 봉쇄 탓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가 아니다. 실업이 급증하면서 막대한 의료서비스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치료를 포기한 것이다. 허술한 방역 체계가 드러난 미국 보건 위기의 또 다른 그늘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현저하게 감소한 시민들이 병원 방문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4월 기준 미 전역의 응급실 방문은 지난해 동월 대비 42% 하락했다. 지난달에도 26% 줄어 상황이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14세 이하 어린이와 여성의 감소 폭이 컸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의료서비스를 거부하고 있다. 비영리 카이저가족재단이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 발병 이후 3개월 동안 “진료를 일부러 미뤘다”는 응답이 전체의 48%에 달했다. 토머스 발세작 미 예일대 산하 뉴헤이븐헬스 최고임상책임자는 NYT에 “(응급실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조용했다”며 “상태가 극도로 악화한 뒤에야 병원을 찾은 환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픈데도 병원을 멀리하는 이유는 단연 돈 때문이다. 가령 워싱턴주(州) 시애틀 병원은 3월 입원해 62일간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70세 남성에게 무려 112만2,501달러(약 13억2,330만원)를 청구했다. 신문은 “의회가 4차례 경기부양책을 통해 병원과 의료사업자에게 지급할 1,750억달러 상당의 보조금을 마련했지만, 농촌과 저소득층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생계비 감당도 벅찬 수백만명의 실업자들에게는 의료비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인은 지금까지 2,500만명에 육박한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60대 실업자는 “돈이 없어 모든 치료를 끊었다”고 푸념했다.
요즘 미국 내 ‘2차 대유행’ 조짐까지 뚜렷해지면서 집에서 병을 키우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국에서 인구가 2ㆍ3번째로 많은 텍사스ㆍ플로리다주는 일일 최고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경신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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