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서울 지역 전세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가계부채의 한 축인 은행권 전세자금대출도 최근 5개월간 10조원 가까이 늘면서 90조원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연말에는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가 ‘6ㆍ17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대출마저 바짝 조이면서 증가 속도가 둔화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급증하는 전세대출 규모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5월 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90조9,99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와 2년 전 같은 달과 비교하면 각각 27.6%, 69.5%나 급증한 수준이다.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규모는 2018년 5월까지만 하더라도 53조6,947억원 수준이었지만 같은 해 10월에는 60조원, 이듬해 12월에는 80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증가세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올해는 반년도 채 되지 않아 90조원을 넘겼다.
특히 올해는 지난 2~4월의 경우 매달 2조원씩 늘면서 지난달까지 5개월간 9조6,941억원이나 불었다.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이 한 달에 2조원 이상 늘어난 전례가 없는데, 이런 분위기가 3개월이나 이어진 셈이다. 지금의 속도가 이어질 경우 올해 말에는 1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6ㆍ17 대책 영향은?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악화 부담 등으로 주택 실수요자들이 전세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전세 매물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찾는 사람이 늘면서 가격도 동반상승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매주 조사하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7월 첫째 주 이후 50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년 서울 전셋값이 평균 2,000만원씩 오르다 보니 전세자금 대출 수요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파르게 오른 전세가격이 서민들의 지갑을 압박하며 대출 규모를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부의 주담대 기준 강화로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지 않은 전세대출에 눈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2ㆍ16대책을 통해 시가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매입할 경우 즉시 전세대출을 회수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주택대출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느슨한 측면이 있었다.
현재 서울을 포함한 투기지역에서 15억원이 넘는 아파트 보유자는 주담대를 받을 수 없다. 9억원 이상 역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종전 40%에서 20%로 크게 줄어든 상태다. 반면 그간 전세대출은 임차 보증금의 80%까지 빌릴 수 있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대출 보증 한도도 수도권 기준 4억원 수준으로 적지 않았다.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로 9억원 미만의 집을 사고 본인은 4억원 가량의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살이를 하는 경우도 가능했다는 의미다.
다만 금융권과 부동산업계에선 앞으로 전세대출 증가세가 다소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정부가 주택 매입 시 전세대출 회수 기준액을 시가 9억원에서 3억원으로 크게 낮춘데다, HUG의 1주택자 대상 전세대출 보증 한도도 2억원으로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8억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책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주택을 구매한 사람은 사실상 전세대출이 막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NULL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