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은 늘 생동감이 넘친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화에서도 실제로도 그의 에너지는 비범하다. 때론 격렬할 정도로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하는 모습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함은 결코 죄가 아니다. 특히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를 두고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 그만큼 치열하게 덤벼든단 의미다.
영화 ‘#살아있다’ 개봉을 앞두고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취재진과 유아인은 마스크를 쓴 채 마주앉았다. 입이 가려져 자신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걸 우려해 “저 지금 웃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유쾌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유아인은 다양한 심경의 변화도 겪었다. 부쩍 성숙하고 여유로워졌다. 날이 서 있던 눈빛은 평온을 찾았다. SNS 등을 통해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고 날카롭게 설전을 펼치던 당시를 웃으면서 회상하기도 한다. 이제 그는 웬만한 일들에 대해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런 유아인에게 “살아있다는 건 뭘까요?”라고 불쑥 질문을 던졌다. 눈을 크게 뜨고 기자를 바라보며 그는 웃었다. 그리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우선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살아는 있었는데 좀비 같이 살아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좀비 같은 사람들이 그런 메타포로 활용이 되니까, 살아있단 걸 알고 감사함을 느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살아있지만 죽어있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거, 좀비처럼 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은 이어졌다. “신념이나 책임감, 양심 같은 것들인 거 같아요. 커다란 수준의 어떤 게 아니고 인간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 그런 게 결국엔 매 순간 일어나고 책임이라든지 소명의식이라든지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 위치를 파악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아인이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역시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구 촌놈이 서울에 상경해서 가졌던 단순하고 세속적인 욕망은 이미 거의 다 이뤘어요. 목표로 하는 많은 바들을 놀랍게도 다 성취했다고 느꼈고, 재미가 없었죠.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나 고민의 시간이 좀 길었어요. 나를 어떻게 써먹으면 좋지? 어딘가로 가게 하는 동력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고 고민의 시간을 가졌죠. 30대의 내 그림을 구체적으로 안 그려보다가 그런 게 숙제처럼 떨어져서 숙제를 풀어내는 시간이 길었어요. 결국 ‘목표를 향해 가지 말고 매 순간의 그림을 수렴하면서 가보자. 편하게 가보자’는 생각을 했죠.”
유아인은 새 영화 ‘#살아있다’에 대해 “현장 편집을 가장 많이 본 영화”라고 털어놨다.
“매주 주말마다 현장 편집본을 볼 정도로 초반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어요. 보면서도 계속 불안한 느낌은 있었고요. 불안하다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이다 보니까 어떤 충분한 흡입력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초반부에) 원맨쇼 하는 거 치고는 집중도가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그 부분에 제일 안도했어요. 하하.”
그는 좀비와의 연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꾸 (영화 측에서) 좀비라 하지 말래, 미치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좀비처럼 보이는 그들과 하는 연기는 진짜 편했다. 연기할 필요가 없으니까. 모니터 보는 게 재밌었다. 그들과 연기하고 나서는 저런 소리와 저런 표정이 나오는구나 싶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던 거 같고 귀신의 집에 들어간듯한 체험을 했다”며 “블루스크린을 보고 연기해야 한다거나 혼자 벽을 보고 연기해야 한다거나 영화 속에서 카메라 보고 연기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되려 톤을 잡아가는 게 힘들었던 거 같다”고 회상했다.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살아있다’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맷 네일러가 쓴 ‘얼론’(Alone)을 원작으로 한다. 앞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조일형 감독은 “처음 원작을 봤을 때 장르물의 성격이 강하고 독특했다. 그걸 한국화하면서 공간적인 면, 미술적인 세팅, 정서 외에도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준우로 시작해서 유빈이라는 열쇠 같은 인물을 만나 마지막에 희망을 찾는 과정이 나온다. 우리도 지금 코로나19란 예상치 못했던 일을 현실에서 겪고 있다. 그래서 더욱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고 전했다.
‘#살아있다’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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