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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로 돌아온 김훈 “약육강식의 시대, 인간 적개심의 뿌리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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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로 돌아온 김훈 “약육강식의 시대, 인간 적개심의 뿌리가 궁금했다”

입력
2020.06.16 17:4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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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김훈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지금처럼 진보나 보수, 좌파나 우파의 구분이 없었던 시대에도 인간은 싸웠습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피가 강물처럼 흘러 방패가 떠내려갔다’는 구절이 있을 정돕니다. 그 적개심의 뿌리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이 세계의 기초인 폭력과 야만,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습니다.”

16일 서울 서울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새 장편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낸 김훈 작가의 변이다.

임진왜란(칼의 노래), 병자호란(남한산성), 신라의 가야정벌(현의 노래), 천주교 박해(흑산)까지. 김 작가는 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떻게 착취하고 지배하는지, 그리고 그 갈등 한가운데 있는 존재란 얼마나 모순적이며 고독한지를 추적해왔다.

계속된 추적 작업은 역사 이전의, 가상의 시공간 ‘시원(始原)’에까지 다다랐다. ‘달 너머’는 김 작가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실제 역사에서 벗어난 소설이다.

시원은 나하(奈河)라는 강을 사이에 둔 유목 집단 초나라와 농경 집단 단나라가 경쟁하던 시절을 말한다. 초와 단은 숙명과도 같은 전쟁을 벌이는데, 김 작가는 이 갈등을 형상화하는 주체로 인간이 아니라 두 마리의 말을 내세운다.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는 ‘토하’와 ‘야백’, 두 마리 말의 시선을 통해 인간과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허망함을 담아낸다. 작가는 말에 대한 정보들을 구해다 별도로 공부했다고 한다.

김 작가는 “십여 년 전 미국 그랜드캐니언 인디언 마을을 여행하다 어둠 속 야생마들을 만났을 때 언젠가 저 말들에 대해 쓰게 되겠구나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며 “인간의 야만, 그리고 인간의 문명을 모두 감당해내던 말이 인간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자유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상력의 자유는 그다지 쉽지 않았다. 폭력과 야만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시원이라는 가상의 시공간까지 도입했음에도 김 작가는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상상이 역사적 시공을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초와 단, 유목과 정주 문명간 충돌이라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틀을 도입한 것 자체가 그렇다.

소설은 ‘김훈 스타일의 문장’들이 가득하다. 김 작가는 이를 “화가가 물감을 쓰듯, 음악가가 음을 쓰듯 언어를 전개해보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정보 전달이나 서사 전개가 아닌 언어만의 터치감을 살리고 싶었다는 얘기다. 이 느낌이 잘 풀릴 땐 기뻤고, 잘 안될 땐 고통스러웠다. 막판에는 심부전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날 간담회 때 김 작가는 다소 쇠약해진 모습으로,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폭력과 야만이 우리의 뿌리라면, 우리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코로나19 시대 위기감은 더해진다. 대답 또한 김훈스러웠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위기만 해도 좀 더 가진 자들이 양보하라고들 해요. 하지만 그렇게 선의에 호소해서 문제를 해결한 역사적 경험이 인간에게 없지요. 기득권자의 선의에 호소하기보다는 제도와 구속을 통해 바꾸는 수밖에는 없어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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