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Wide] 복지를 손 놓으면서 보수의 몰락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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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복지를 손 놓으면서 보수의 몰락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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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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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發 기본소득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일 공개적으로 “기본소득, 검토할 때 됐다”고 밝히며 보수의 복지 논의에 화두를 던졌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오대근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정치적으로 불을 지핀 ‘기본소득’ 논쟁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기본소득 논쟁’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 논쟁은 복지국가 논쟁의 제2라운드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보편적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1차 복지국가 논쟁은 복지의 ‘보편성과 선별성’ 문제로 시작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신임투표로 이어져 오 시장의 중도사퇴를 초래했고, 결국 지난 10년 동안 복지 확대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적 언급은 복지 이슈를 진보 세력에게 빼앗김으로써 지난 대선부터 시작해 지방선거와 총선 등에서 보수 세력이 철저하게 패배하게 됐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여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정치적으로 급부상하면서 보수정당이 기본소득을 비롯한 복지 이슈에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해소하고, 오히려 민생 복지를 주도한다는 정치적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시장만능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보수는 복지국가에 반대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고, 또 실제 정책 생산과 실행에서도 그렇다. 때문에 김종인 위원장의 생각이 미래통합당 내에서 관철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고, 반대 목소리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는 전통적 반복지 세력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복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2016년 총선으로 시작해 최근까지 전국 선거에서 4연패를 당한 대한민국 보수에게는 몰락과 도약의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독일과 영국의 역사적 경험은 대한민국 보수에게 좋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1년 6월 서울 서소문 시청에서 초등학교 전면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투표 청구용 서명지를 배경으로 복지 포퓰리즘을 추방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의 사퇴를 불러온 보편적 무상급식 논쟁은 지난 10년 복지 확대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손용석기자

독일과 영국의 사례로 본 보수정치와 복지

역설적으로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 제도를 만든 이는 독일 보수정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비스마르크(1815-1898)였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산업화가 늦었던 독일은 1871년 비스마르크가 통일국가를 이룩한 후 빠른 발전을 거듭해 1차 대전이 시작됐을 당시 유럽 제1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비스마르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일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노동자 수도 크게 늘었다. 아울러 산업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문제와 도시문제가 등장했다.

독일 경제·사회의 이런 변화 추세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가 바로 비스마르크였다. 독일제국의 첫 수상이 된 비스마르크는 건강보험(1883년), 산업재해보험(1884년), 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1889년)을 순차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정부가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보장 제도를 실현했다. 그가 비록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적 확산을 막을 목적으로 복지를 제도화한 측면이 강하지만, 가부장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그는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해 국가가 보호자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게 보수정치다.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 도입에 반발하고 나선 이들은 오히려 자유주의자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보험 도입이 시민들의 자기책임성을 약화시키고, 근로 의욕을 감퇴시키며, 독일의 전통적 가족관계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봤다. 자유주의들만 반대한 게 아니었다. 당시 사회보험의 대상이던 노동자들도 사회보험 도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회보험보다는 노동조건이나 정치적 지위 향상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사회보험이 빈곤을 예방하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비스마르크는 또한 균일한 보험체계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연대성을 실현하려고 했으나 숙련 노동자들이 반대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사회보험은 소득에 따라 급여가 차별화되는 보수적 조합주의 사회보험 제도의 원형이 됐다.

보수 정치인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 입법은 이런저런 한계와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 도입이라는 명예와 함께 이웃 나라로 전파돼 유럽 국가들이 사회보험 제도를 도입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스마르크는 비록 시민권에 근거해 시민들의 새로운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복지국가의 개념과 틀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세계 최초로 사회보장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독일을 자본주의 후발국가에서 20세기 초 유럽 최강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독일과 영국의 대표적 보수 정치가 오토 비스마르크(왼쪽)와 윈스턴 처칠. 비스마르크는 전향적으로 사회보험을 도입한 반면 처칠은 사회보장체제에 비판적이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국의 사례도 새겨볼 만하다. 2차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전시연립내각을 이끌던 보수당의 처칠(1874-1965) 수상은 2차 대전에 총동원돼 고통을 감내하던 국민들에게 전쟁 이후의 영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영국 사회보장 체계에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있던 월리엄 베버리지를 위원장으로 삼아 전후 영국의 새로운 사회보장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도록 했고, 베버리지는 1942년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 보고서는 시민들에게 수십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처칠과 보수당 정부는 보고서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결국 보수당은 1945년 총선에서 베버리지 보고서를 채택한 노동당에 대패했고, 노동당 정부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1944년 교육법, 45년 가족수당법, 46년 국민보험, 산업재해법, 46년 국민보건서비스법, 49년 주택법을 제정함으로써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영국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영국은 1970년대 초까지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하는 자본주의 황금기를 누렸다. 만약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주한 처칠의 보수당이 이를 수용했더라면 보수당이 그 영광을 누렸을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9월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기구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종인 국민행복특위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교사'로서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손용석기자

대한민국 보수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복지 정책에 대한 정치적 태도가 집권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보는 2010년 이후 복지 이슈가 선거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됐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것도 당시 보수 정치가 파격적으로 선보였던 복지 공약 덕분이었다. 당시 보수정당은 보육·유아 교육의 완전국가책임제,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과 지급액 2배 인상, 4대 중증질환에 대한 100% 건강보험 보장 등 보수정당으로는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보수정당의 이런 파격적인 변신은 서민과 노년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당선된 이후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을 파기·축소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차츰 잃어갔다. 유승민 전 의원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발언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보수정치 내부의 분열도 생겨났다. 이것이 보수 몰락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보수정당의 침체에는 심각한 양극화·불평등을 극복할 전략의 부재와 함께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뢰의 부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5년 4월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그의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발언은 지속가능한 복지에 대한 고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수의 분열을 가져왔다. 국회사진기자단

보수가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복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과 정책생산에 나설 필요가 있다. 사회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복지를 취약계층에 대한 퍼주기로 인식하는 상황에서는 새롭고 혁신적인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금융위기•경제위기 등으로 볼 때, ‘시장만능’에 기대는 신자유주의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기에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을 두고 진보개혁 세력과 정책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현재 미래통합당을 위시한 보수 내에서의 복지 논의는 한참 미흡하다. 주장하는 사람도, 찬반 토론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종인 위원장도 기본소득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슬그머니 도로 집어넣는 분위기다. 아직은 김 위원장의 진정성을 섣부르게 판단하기 이르지만, 재원마련을 위해 증세를 할지 증세가 아니어도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 추가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적어도 당내에서 이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김종인(왼쪽 세 번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중진들이 함께한 10일 국회 회의에서 중진들이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검토 필요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시했다. 오대근 기자

보수정당은 전통적으로 국가·민족, 지역사회와 같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장점이 있다. 급격한 변화는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급진적 변화보다는 신뢰할만한 점진적 변화를 선호해 보수라는 명칭을 얻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비스마르크의 경우처럼 당대의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해 복지와 공동체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보수정치의 자연스런 결론이다.

다시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복지국가 발전을 위한 2차 논쟁에 보수정치와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이 적극 참여할 것을 기대해본다. 단순히 규제 받지 않는 ‘자유 시장’만을 단단히 지킬 것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엇을 버리고 지킬 것인지를 원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보수정치도 제 자리를 찾기를 기대한다. 故리영희 선생의 책 제목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기 때문이다.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겸 사무처장

윤 정책위원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NGO전문가다. 고려대와 동대학원에서 사회철학을 전공했고 사단법인 마을 기획실장, 서울시 도시재생센터 운영위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자원순환사회로가는길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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