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의 포도호텔과 방주교회, 안도 다다오의 본태박물관
산록남로는 한라산 남측 산허리를 연결하는 중산간도로다. 서귀포 뒤편 해발 400m 언저리의 구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연결된다. 왕복 2차선 도로로 번잡하지 않고, 날이 좋으면 서귀포 시내와 쪽빛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길이다.
한라산에서 가파르게 떨어진 지형은 이곳부터 바다까지 완만하게 흘러내린다. 푸근하면서도 제주다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길에서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포도호텔과 방주교회, 수풍석뮤지엄은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본명 유동룡ㆍ1937~2011)의 작품이다. 우선 포도호텔은 고급 호텔일수록 외형이 화려하다는 편견을 깬다. 자연주의를 중시한 건축가의 철학을 반영해 단층으로 한라산에 포근히 안겨 있다. 도로에선 존재를 확인하기조차 어렵다. 제주 초가를 본뜬 둥그스름한 지붕은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과도 닮았다. 이렇게 연결된 지붕을 위에서 보면 포도송이처럼 보이기 때문에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건물 내부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기본 콘셉트는 열림과 닫힘이다. 복도에서 연결된 창처럼 좁은 통로로 외부 자연이 풍경화처럼 걸린다. 폭포라는 의미를 가진 중앙의 캐스케이드는 하늘로 뚫려 빛이 쏟아진다. 물론 비가 오는 날에는 작은 화단에 빗물이 고스란히 떨어진다. 중정을 관람하는 창은 위에서부터 허리춤까지 전통 창호지로 가렸다. 창호지의 절반은 창살의 안쪽, 절반은 바깥쪽에 붙인 독특한 형태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던 재일동포의 애매한 심상이 반영된 작품이다.
호텔에서는 투숙객을 대상으로 매일 오후 4시 ‘건축 예술 가이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제주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관람과 외부 산책은 가능하다. 호텔에서 핀크스 골프클럽까지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인근의 ‘수풍석뮤지엄’은 제주의 물, 바람, 돌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박물관이다. 역시 이타미 준이 디자인한 공간으로 미술품이 아니라 자연이 작품이 되는 명상의 공간이다. 수(水)뮤지엄은 하늘이 담긴 물의 변화로 대자연의 움직임을 느끼는 공간이고, 풍(風)뮤지엄은 나무 기둥 사이로 통과하는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간이다. 석(石)뮤지엄은 멀리 산방산을 조망하며 명상하는 장소다.
수풍석 뮤지엄은 비오토피아 주택단지의 부대시설로 지어서 관람이 까다롭다. 하루 4차례 각 25명씩으로 관람객을 제한하는데 6월 예약은 마감됐고, 7월 분도 빈자리가 많지 않은 상태다. 관람료는 2만원이다.
이타미 준의 또 다른 작품 ‘방주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건물의 3개 면으로 얕은 물이 채워져 있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벽면은 나무, 지붕은 은빛과 검은 삼각형을 잇댄 금속 모자이크여서 기존 교회 건물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더구나 주변이 트인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어 숨어 있는 듯한 포도호텔에 비해 도드라진다. 해질 무렵이면 산방산 방향으로 떨어지는 노을이 아름답다. 주일마다 예배가 열리는 교회인 만큼 관람 예절을 지키는 건 필수다.
방주교회 뒤편의 본태박물관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ㆍ79)가 설계한 건물이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건축가의 의도가 동선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3개 건물을 연결한 이동 통로에 꽃담과 기와로 장식한 한국 전통 담장을 배치한 세심함도 돋보인다. 본태는 ‘본래의 형태’라는 의미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박물관을 지향한다. 현재 쿠사마 야오이의 대표작 ‘호박’과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한국전통공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료는 2만원.
서귀포=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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