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동성결혼 합법화보다 큰 의미”
보수 대법원의 반란… 트럼프 또 악재

미국 연방대법원이 15일(현지시간) 성(性) 정체성을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차별 금지법이 없는 주(州)에도 연방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여 이른바 ‘LGBT(레즈비언ㆍ게이ㆍ양성애자ㆍ성전환자)’로 불리는 성소수자 운동 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미 언론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이날 1964년 제정된 민권법 제7조 해석과 관련한 하급심 판결에 손을 들어줬다. 민권법 7조는 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ㆍ2심은 성차별의 범위를 단순히 남녀가 아닌 성적 지향 및 정체성에 따른 차별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는데, 대법원도 이를 지지한 것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까지 민권법 7조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제외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미 법무부는 “민권법에서 금지한 차별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좁게 해석했다. 때문에 동성애 직원을 해고한 고용주는 법을 위반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미 정부의 기본 견해였다.
이에 성적 정체성이 소수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소송을 내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섰다. 조지아주의 제럴드 보스토크는 게이 소프트볼 동호회에 가입했다가 해고됐다. 스카이다이빙 강사 도널드 자르다는 함께 몸이 묶인 여성 고객에게 농담조로 “나는 100% 게이(라 안심해도 된다)”라고 했다가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는 소송 중 사망했다.
미 언론과 성소수자 단체들은 앞다퉈 “동성끼리 결혼할 권리보다 성소수자들에게 훨씬 중요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자리는 성소수자 모두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5년 합법화된 동성결혼과 달리 성소수자 차별 금지권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21개주만 성적 지향ㆍ정체성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갖췄고, 공직에서 차별을 불허하는 주도 고작 7곳뿐이다.
더구나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보수 색채가 한층 짙어진 대법원 인적 구도에서 얻어낸 성과라 더욱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날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마저 하급심 판단을 지지해 6대3의 확실한 우위로 결정이 내려졌다. 스티브 블라덱 미 텍사스대 법대 교수는 CNN방송에 “동성애자ㆍ성전환자 개인의 인권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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