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는 안전 규정을 도외시해 발생한 인재(人災)로 확인됐다. 대피로는 막혀 있었고,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작업을 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늘었다.
15일 경찰이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 화재는 지하 2층 용접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가연성 소재인 건물 천장의 우레탄폼에 튀면서 불길이 치솟으며 발생했다. 불길은 천장과 벽에 발라져 있던 우레탄폼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2008년 1월 우레탄폼 발포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 때문에 발화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이후 외부로 노출된 마감재에는 난연재를 쓰도록 했지만, 이번처럼 벽체와 내부 마감재 사이에 설치되는 단열재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불길이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전 규정도 있으나마나였다. 용접작업을 할 때는 방화포와 불꽃 비산 방지 덮개를 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건 대피로가 규정과 달리 막혀 있어 희생을 키웠다는 점이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는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나면 방화문을 거쳐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게 설계돼 있지만 실제로는 결로 현상을 막는다며 방화문이 설치돼야 할 공간에 벽돌이 쌓여 있었다. 방화문을 찾아 나섰던 작업자 4명이 이곳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설마’ 하는 안전불감증 때문에 살 수 있었던 생명이 희생된 것이다. 무리한 공기 단축 시도 때문에 화재 당일 현장에는 평소보다 2배가량 많은 인원이 투입돼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하는 등 어수선해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공기를 맞추지 못할 때 발생하는 손해보다 사고가 났을 때 받는 처벌이 가벼운 탓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관계자를 포함, 무리한 공기 단축을 지시한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가 단열재용 난연재 미사용을 방치한 것도, 계속되는 공기 단축 시도도 노동자의 목숨보다 비용을 중시하는 제도와 관행 때문이다. 이 같은 후진국형 산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안전에 대한 비용 분담을 최우선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 사고가 났을 때 반짝 관심이 아닌 국민 안전문제에 대한 꾸준한 경각심만이 허망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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