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스스로 결정할 사업부터” 향후 정부 카드는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부터 하자.”
북한의 잇따른 압박 공세에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6ㆍ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대북 메시지를 내는 형식이었다.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앞세워 “남북관계 파탄” 경고를 냈지만 문 대통령은 ‘인내’와 ‘절제’ 속에서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함께 해보자는 역제안을 내놨다. 북미관계와 별개로 독자적 남북협력 추진 뜻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향후 남측의 대북 독자제재인 5ㆍ24 조치를 완화하고 협력 이행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밝힌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기대만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는 것과, “이제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라는 점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추진할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10월 스톡홀름 북핵 협상 결렬 후 북한의 공세가 거세진 상황이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다시 한 번 차근차근 해법을 찾아가자는 제안이다.
북한을 유인할 최선책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차선책을 다각도로 이행해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은 듯 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보내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기대가 깨졌다’는 것인데 지금도 기대를 한 번에 충족시킬 카드는 마땅치 않다”며 “북한의 전략에 이끌려 가기보다 우리 일을 묵묵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문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북측에 제안한 독자적 남북협력 추진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방역ㆍ보건 협력 △북한 개별관광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 등 기존에 제안했던 사업 협력이 우선 꼽힌다. 특히 개별관광 카드의 경우 북측의 직접적인 거부 의사 표명이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코로나19 진정 상황에 따라 남북 간 협력사업 고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경제ㆍ안보 상황을 바꿀 흥미로운 카드들은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했던 개성공단 재개나 금강산관광 같은 ‘보다 적극적인 남북협력’을 위해 정부가 선제적으로 독자적 대북제재를 완화해 나갈 가능성도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취한 대북 독자제재인 5ㆍ24 조치와 관련, 정부는 최근 들어 “사실상 실효성이 상실됐다”고 공론화했다. 그동안 남북 협력을 가로막아왔던 5ㆍ24 조치를 폐기하고, 남북교류협력법 전면 개정으로 경제협력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다.
2018년 4ㆍ27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도 북측에 신뢰 회복 메시지로 활용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 간 합의가 지속될 수 있으려면 정상 간 선언은 대통령의 비준과 국회 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6ㆍ25전쟁 발발 70주년 상징성이 있는 만큼 우선 남북 간이라도 ‘종전선언’을 재추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부침 없는 남북관계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다.
다만 ‘대북 특사’ 파견 문제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게 코로나19인 상황에서 대면 카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협력 제안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하고, 미국의 입장도 중요한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계획적ㆍ조직적 대남 압박에 나서는 걸 보면 정부 대응과 관계없이 남북 간 합의 파기 수순을 밟아나갈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각종 카드가 모이면) 북한의 강경한 태도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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