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어느 불체자의 보은, “인니에 한식ㆍ한국어 알려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어느 불체자의 보은, “인니에 한식ㆍ한국어 알려요”

입력
2020.06.15 15:30
23면
0 0
바구스(오른쪽부터)씨가 아내 율리씨, 아들 한안도씨와 함께 집에서 만두를 빚고 있다. 이태복 시인 제공
바구스(오른쪽부터)씨가 아내 율리씨, 아들 한안도씨와 함께 집에서 만두를 빚고 있다. 이태복 시인 제공

“한국 사랑합니다, 한국사람 감사합니다.”

수화기 너머 외국인 특유의 한국어 발음이 갈수록 정겹게 들렸다. 유창하진 않지만 진심이 담긴 한마디한마디 덕이다. 17년간 한국에서 젊음을 바쳐 번 돈으로 고향에 집을 사고 차를 사고 한식당까지 차린 인도네시아인 바구스(43)씨에게 한국은 여전히 고맙고 그립고 미안한 나라다.

바구스씨는 아내 율리(44)씨와 함께 중부자바주(州) 살라티가 한 대학 옆 푸드코트 6㎡ 공간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간판 아래 한식을 팔고 있다. 우리네 분식집마냥 김밥 떡볶이 만두 김치찌개 라면 등을 1,200~1,600원에 팔고 있다. 현지 음식보다 비싼 편이지만 한국 드라마가 이 시골 마을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하루 50명이 찾아올 정도로 벌이가 쏠쏠하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푸드코트가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배달만 하고 있다.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소박이 등 김치나 한국 반찬도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만들어 판다.

바구스씨가 집에서 만든 한식을 오토바이로 배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태복 시인 제공
바구스씨가 집에서 만든 한식을 오토바이로 배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태복 시인 제공

살라티가 태생인 바구스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민간 인력송출업체 주선으로 한국에 갔다. 광주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에서 2년 가까이 철판을 잘랐으나 너무 힘들어 경기 군포시 사출공장으로 옮겼다.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뒤 급여가 체불되자 다시 이직해 경기 안산시 도금공장에서 4년을 일했다. 99년 서울 잠실에서 만난 율리씨와 결혼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한국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이름을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뜻하는 ‘리 한안도(hanando)’라 지었다. 그러나 2002년 서울 암사동에서 일하던 중 단속에 걸려 가족을 남겨둔 채 강제 출국 당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아내가 2003년 아들과 함께 돌아왔으나 그는 한국을 잊을 수 없었다. 두 번의 시도 끝에 인도네시아 노동부 허가를 받아 2007년 다시 한국으로 갔다. 경기 여주시의 전선생산업체에서 2년간 근무 계약을 마친 뒤 다시 불법체류자로 2017년까지 안산에 살았다. 고향에 돌아온 바구스씨와 아내는 한국에서 틈틈이 익힌 한식 요리 솜씨를 밑천 삼아 한식당을 차렸다.

석 달 전 바구스씨는 안산에 살 때 인도네시아 음식과 고향 노래로 향수를 달래줬던 ‘와룽(가게라는 뜻)인도네시아’ 주인이 살라티가에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수소문했다. 와룽인도네시아 주인은 현재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인 이태복(60) 시인이었다. 그는 바구스씨가 귀국한 2017년 공교롭게 살라티가에 정착해 자바 고유 문화뿐 아니라 일제시대 조선인 소녀들이 끌려갔던 살라티가 인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 이태복(왼쪽) 시인과 바구스씨가 중부자바주 살라티카에 있는 연구원에서 20여년만에 다시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태복 시인 제공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 이태복(왼쪽) 시인과 바구스씨가 중부자바주 살라티카에 있는 연구원에서 20여년만에 다시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태복 시인 제공

이 시인은 “96년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1만2,000명이던 국내에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안산 원곡동에 식당을 열었다”라며 “와룽인도네시아는 99년까지 부산과 전남 여수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인도네시아에 왔다.

20여년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이르면 9월부터 바구스씨가 연구원에서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바구스씨는 “먹고 살려고 불법으로 체류한 게 늘 미안했는데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월급을 못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정이 넘치는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은 하나도 없다”라며 “다음엔 가족 여행으로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NULL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