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죠. 도전적이고 고난스러운 바흐와 이자이의 곡들이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공연을 보는 동안이라도 혼란을 잊고 유럽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15일 서울 사당동 뮤직앤아트스튜디오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5)의 각오이자 바람이자 희망이었다. 임지영은 다음달 1,11일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외젠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인 임지영은 지난 2월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고스란히 발이 묶였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연주 일정이 모조리 연기되고 취소됐다.
이 예상치 못한 공백기간을, 임지영은 바흐와 이자이의 음악으로 채우기로 했다.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곡, 그리고 바흐의 곡에 감명받아 이자이가 만들었다는 무반주 소나타 곡으로. 어쩌면 연주자 홀로 악기 하나 들고 무대를 채우는 무반주 공연은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구약성서’라 불린다. 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 시리즈는 ‘현대적 감각이 배어있지만 바흐의 영향이 짙다’는 의미에서 ‘신약성서’로 꼽힌다. 두 작곡가의 곡은 음표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겼고, 이를 표현해내기 위한 연주법이나 기교도 아주 섬세하다. 그렇기에 이 곡들만으로 공연을 이끌어 나가는 건 연주자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임하는 임지영의 자세는 긍정적이다. 그는 “바흐의 곡은 바이올린을 그만하는 날까지 계속 공부해야 하는 성서”라며 “언젠가는 경외심을 갖고 무반주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다. 임지영은 그래도 “혼자 악보를 연구하며 배우는 것도 많다”며 “바흐 해석은 천차만별일 텐데 이번엔 작곡가의 의도대로, 악보대로 연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공연장도 특별하다. 바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천주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바흐가 살았던 바로크 시대엔 주로 성당에서 소규모로 음악이 연주됐다는 사실에 주목한 임지영의 고집이 반영됐다. 공연은 다음달 1,11일 바흐와 이자이의 작품을 교차해 연주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연주의 대미는 ‘샤콘느’ 악장으로 유명한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이 될 것 같다. 임지영이 지난해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난 판문점 내 도보다리에서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임지영은 “대장정의 마무리로서 여지 없는 선곡”이라며 “공연의 본질을 잘 나타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영의 악기도 이번 공연과 찰떡궁합이다. 그는 최근 1717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 사세르노를 쓰기 시작했다. 임지영은 “직전에 썼던 스트라디바리 허긴스가 밝고 톡톡 튀었다면, 사세르노엔 내가 원하는 만큼의 따뜻함이 들어있다”면서 “깊은 소리, 투명한 공명이 바흐와 이자이 곡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 말했다.
임지영은 2015년 ‘세계 3대 콩쿠르’라는 ‘퀸 엘리자베스’ 대회에서 한국인 첫 우승을 차지하면 이름을 알렸다. 스무살에 정상을 밟은 그의 음악인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10년이 더 지날 때까지도 여전히 ‘대회 우승자’로 불리고 싶지 않아요. 아무 수식 없이, 그 사람 자체로 기억되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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