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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학팀 창단” 축구 원로 말 믿고 갔는데… 학교 측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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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단독] “대학팀 창단” 축구 원로 말 믿고 갔는데… 학교 측 “동아리”

입력
2020.06.17 0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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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 지방 사립대 축구부 창단 홍보

스카우트로 뽑힌 줄 안 선수들 다른 대학 수시 합격까지 포기

감독도 속아 사비로 전지훈련… 계약 해지당해 노동청에 진정서

원로 “단장직에 이름만 올려놔” … 에이전시 “미리 알렸다” 발뺌

‘미아’된 18세 선수들… 대학 측 “창단 계획 애초에도 없었다”

B스포츠에이전시 박모 대표가 지방의 D사립대 축구단 네이버 밴드에 올린 한 프로 축구선수의 창단 축하 영상. 독자 제공
B스포츠에이전시 박모 대표가 지방의 D사립대 축구단 네이버 밴드에 올린 한 프로 축구선수의 창단 축하 영상. 독자 제공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지낸 한국 축구의 원로가 사립대 축구부를 창단한다고 어린 선수들을 속여 ‘유령 축구단’을 운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명 인사의 말만 믿고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대학까지 포기한 학생들은 반년 넘게 소속팀 없는 ‘미아’ 신세로 전락했고, 사비로 전지훈련비까지 충당했던 감독은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돼 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15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B스포츠에이전시 소속 조모(69) 단장이 지난해 10월 지방 사립 D대학에서 신생 축구부를 창단한다고 속여 고등학생 축구선수 A(18)군 등 3명을 스카우트했다는 내용의 민원이 최근 대한축구협회 온라인 신문고에 접수됐다. 조 단장은 19세 이하(U-19)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관련자 등을 상대로 진상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를 호소하는 선수 부모 등에 따르면 조 단장은 B에이전시 박모 대표와 함께 서울에서 열린 한 고등학생 유스팀간 연습경기를 관전하던 중 A군과 쌍둥이 형제인 B군 및 부모 C씨를 처음 만났다. 조 단장은 이 자리에서 C씨에게 “D대학에서 곧 축구부를 창단한다”며 “(아이들) 실력이 괜찮으니 함께 운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C씨는 자녀들이 다른 학교 수시전형에 합격한 상황이었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에 조 단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 단장과 박 대표는 포털 커뮤니티에 유명 프로선수들이 보낸 D대학 축구단 창단 축하 영상과 가슴에 ‘D대학’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유니폼 시안 등을 올려 학부모와 학생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에 B군 등은 수시 합격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창단 멤버들과 함께 훈련하며 손발을 맞추기로 했다.

지난 1월 경남 통영 전지훈련에서 D대학 축구부 학생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1월 경남 통영 전지훈련에서 D대학 축구부 학생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독자 제공

하지만 A군 등은 지난 1월 첫 통영 전지훈련부터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고 한다. 에이전시 측에서 대학이나 학부모 총무가 아닌, 박대표 명의의 개인계좌로 훈련비를 받는 등 석연찮은 구석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훈련비 지불이 늦어져 신임 감독 D씨가 숙소비 등 일부를 사비로 지출하는 일도 발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3월부터 모든 훈련이 취소됐다고 하지만 선수들이 학교에서 단체로 모이거나 간단한 훈련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에 C씨는 지난 5월 학교 측에 축구부 창단 사실을 공식적으로 문의했고 D대학 측에서는 “우리 학교는 축구부 창단 계획이 일체 없다”고 답변했다. 학교 측은 “애초 에이전시가 재학생을 모집해 B에이전시 축구단을 운용하겠다는 제안을 해서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에 대해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감독 E씨 또한 정식 축구부 감독인 것으로 알고 지난해 11월 B에이전시와 계약을 체결했다가 피해만 봤다. E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월급 중 일부인 1,300만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 이후인 지난 5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약 해지까지 당하자 E씨는 이달 초 고용노동청에서 진정서를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단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나는 단장직에 이름만 올려놓은 것”이라며 “실무는 박 대표가 알아서 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학 정식 축구부가 아닌 것은 지난해부터 이미 감독과 선수 부모에게 공지한 내용”이라고 발을 뺐다. 하지만 C씨는 “지난 6개월간 회비 등 1,000만원을 허공에 날렸고, 아이들은 소중한 1년을 운동도 못하고 쉬고 있다”면서 “정식 축구부가 아닌 동아리인 걸 알았으면 다른 학교를 포기했겠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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