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6월 18일 저녁 8시,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밀(Mill) 거리에 난데없는 위스키 ‘불줄기’가 번졌다. 챔버 스트리트의 양조장 ‘말론(Malone) 몰트하우스’ 창고에 불이 나면서 숙성 중이던 위스키 약 5,000배럴(약 80만L)에 옮겨 붙은 거였다. 열기에 오크 통이 팽창해 터지면서 위스키는 저지대로 흐르며 불길을 열었고, 가난한 마을의 목조주택들은 순도 높은 알코올 불꽃의 기세에 순식간에 여지 없이 잿더미로 변했다. 가축들도 식구처럼 집 안에서 기르던 때였다. 말과 돼지들이 공포에 날뛰면서 혼란을 가중시켰고, 또 숱하게 타 죽었다. 더블린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기록된 ‘위스키 대화재(The Great Whiskey Fire)’였다.
당시 더블린 소방대장 제임스 R 잉그램(James Robert Ingram) 대위는 뉴욕 소방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그는 위스키 화재를 물로 진화할 경우 기름에 물을 붓는 격임을 알았다. 그는 모래가 가장 나은 진화수단이란 걸 알았지만, 대신 말 사료에 착안했다. 그래서 곡물과 짚을 잘게 갈아 만든 사료를 최대한 모으게 한 뒤 불길의 길목마다 작은 댐을 쌓게 했다. 위스키는 말 모이에 흡수돼 흐름을 멈췄고, 말 모이를 태우며 서서히 진화했다.
그 난리통에도 술꾼들은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급한 대로 사발과 술잔을 들고 나와 흐르는 위스키를 퍼 마셨고, 더 다급한 이들은 모자나 신발을 이용하기도 했다. 모두 24명이 폭음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인근 병원에 실려갔다는 기록이 있다. 총 13명이 숨졌고, 그중 12명이 화상과 유독가스에 희생됐다. 나머지 한 명은, 알려진 바 거리의 오물에 오염된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셔서 중독사한 거였다. 시 당국은 구호기금을 만들어 집과 가축을 잃은 이들을 도왔다.
일설에 의하면 화재를 최초로 고발한 것은 돼지들이었다고 한다. 후각이 민감해서 ‘송로버섯’을 찾는 데도 이용하던 돼지들의 비명에 사람들이 불이 난 걸 알아챘고, 대피를 서둘러 인명 피해가 줄었다는 것이다.
2014년 아일랜드의 한 위스키 제조업체는 새로 출시한 위스키의 라벨에 ‘불타는 돼지(Flaming Pig)’라는 이름을 새겼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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