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단축 위해 평소보다 2배 인력 투입
불법 재하도급에 임시소방시설 미설치
용접ㆍ우레탄 폼 동시하면 안되는데 버젓이
38명의 근로자가 숨진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 화재 참사의 원인은 안전관리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인재로 결론 났다. 화재는 지하 2층 산소용접 작업과정에서 불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시행사와 시공사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이천화재사건 수사본부는 15일 중간수사결과발표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당시 화재는 저온창고가 있는 지하 2층 산소용접 작업 중 발생했다”며 “공기 단축을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한 병행작업 등 공정 전반의 안전관리 수칙 미준수 등으로 큰 인명피해를 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14일 오후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관계자 1명, 시공업체인 건우 3명, 감리단 2명과 협력업체 3명 등 모두 9명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한익스프레스 4명, 시공사 6명, 감리단 4명, 협력업체 1명 등 15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9일 오후 1시 31분쯤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의 저온창고 화재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중상 4명, 경상 8명)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화재 후 발주처와 시공사, 감리업체 등 11개업체 22개소에 대한 압수수색가 4차례 합동감식, 화재와 관련된 97명에 대해 183회 조사를 통해 이같은 결론을 냈다.
반 수사본부장은 “공사 관계자들이 공기단축, 안전을 도외시한 피난대피로와 방화문 폐쇄, 불법 재하도급, 임의시공, 화재 및 폭발위험 작업시 동시시공, 임시소방시설 미설치 등 다수의 안전수칙 미준수 사실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보강수사와 함께 공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잘못된 공사 관행에 대한 제도개선 대책 마련 등을 위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발화 장소
경찰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저온창고가 있는 지하 2층 2구역 3번 유니트 쿨러(실내기) 주변에서 발생한 것으로 봤다. 3번 실내기에서 용접 토치와 용접 자재, 용접 봉이 발견됐으며, 용접 토치에 연결된 산소용기와 LP가스용기의 밸브가 개방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2구역의 연소 흔적이 같은 층 1·3구역보다 가연물, 공기유동, 연소 등의 조건에서 좋지 않은데도 상대적으로 심하게 연소됐기 때문이다.
또 지하 2층에 설치된 7대의 실내기 가운데 3번 실내기 하단 주변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훼손했으며 위쪽으로도 천장 등에 심한 백화현상과 콘크리트 깨짐 현장이 나타난 것이다.
2구역에서 1구역쪽으로 불이 번진 흔적도 나왔다. 결국 불꽃이 1구역 전실 좌측 상단부 내부에서 외부로 분출된 형태로 지하 2층 엘리베이터 벽면에는 확산 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화현상이 관찰됐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화재 발생 당시 상황
화재 당일 오전 8시부터 A씨가 실내가 동배관 용접 작업 중이었으며, B씨 등 7명은 벽면에 도포된 우레탄 폼 마감 작업 중이었다. 우레탄 폼 발포 작업과 용접작업은 화재 및 폭발의 위험이 있어 동시 작업을 할 수 없음에도 이를 위반한 것이다.
산소용접 작업 중 불꽃이 천장의 마감재(펄라이트) 속에 도포된 우레탄 폼에 착화됐으며, 이후 천장 및 벽체의 우레탄 폼을 타고 점차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생존자 및 화재 목격자들도 경찰에서 이와 비슷한 진술을 했다.
목격자 등에 따르면 불은 오후 1시 31분쯤 지하 2층 전면부에서 최초로 봤다. 이들은 경찰 진술에서 지하2층 1구역 전실 출입문 좌측 상단, 전실 출입문과 연결된 엘리베이터 벽면 등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지목한 곳은 모두 근접한 거리에 있다.
이어 오후 1시 31분 20초쯤 119 최초 신고자인 공사 관계자가 불꽃이 보이는 지점으로 뛰어가고, 31분 42초쯤 지하 2층의 작업장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 장면이 공사장 입구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에 그대로 담겨 있다.
1구역은 출입구 전실의 천장 부근에서 불꽃이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상태였으며 출입문 바깥쪽은 이미 화염과 연기로 뒤덮였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왜 피해 컸나
경찰은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 한 이유로 △공기 단축을 위한 무리한 인력 투입 △안전관리 수칙 미준수 △안전 무시한 설계변경 및 시공 등 복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예정이던 공간이 굴뚝 역할을 했으며, 우레탄 폼으로 인해 화재발생 34초 만에 지하 2층 전체로 번진 것으로 결론 냈다.
경찰에 따르면 시공사는 공기 단축을 위해 화재 당일 평상시보다 2배 많은 67명의 근로자를 투입했다 작업도 5개 업종에서 이뤄져야 했지만 10개 업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 2층 조리실에는 내부에 12명이 투입돼 주방 덕크와 소방배관 작업 중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엘리베이터 작업자 3명도 당초 5월 초부터 투입, 6월 15일까지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변경된 작업 일정을 맞추기 위해 4월 28일부터 투입됐다가 숨졌다.
대형 화재 때마다 지적돼 온 화재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수칙 미준수는 이번 사고에서도 중요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던 것이다.
우선 우레탄 폼 발포 작업과 용접작업은 화재 및 폭발의 위험이 있어 동시에 작업하지 않도록 금지하거나 일정을 조정하지 않았다. 용접작업 시 용접 방화포 및 불꽃·불티 비상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2인1조(화기작업의 필수조건) 작업을 위반해 혼자서 작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비상유도등과 간이 피난 유도선 등 임시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채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 경보장치(화재경보) 등도 설치돼지 않았다.
화재 감시인은 작업 현장을 벗어나 있었고, 화재예방 및 피난 교육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상에는 지하2층 위험발생시 설계도상 방화문을 거쳐 외부로 대피할 수 있도록 계획된 통로는 결로 방지를 목적으로 벽돌로 쌓아 폐쇄했다. 4명이 폐쇄된 방화문 뚫고 대피를 시도하다 사망했다. 사망자 중 한 명의 휴대폰에는 “비상문이 있었는데 안 보인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지상 1층이 옥상까지 연결된 옥외 철제 비상계단은 설계와는 다르게 외장을 패널로 마감, 지하 2층에서부터 시작된 화염과 연기의 확산 통로가 돼 사실상 대피로가 차단됐다.
◇향후 수사 방향은
경찰은 공기단축 등 다수의 안전수칙 미준수 사실을 확인만큼 공기단축과 관련한 중요 책임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하기로 했다. 또 공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여죄 등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방침을 세웠다.
또 재하도급 및 건축자재 관련 부정거래, 형식적인 감리제도 등 기존의 잘못된 공사 관행에 대한 법·제도 개선대책 마련 등을 위한 수사도 병행 할 계획이다.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이번 사건을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중대범죄로 인식하고 있다”며 “화재 발생의 원인과 대형 인명피해의 책임자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천물류창고 화재 유가족은 시공사 측과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 합의, 오는 17일 합동영결식을 올릴 예정이다.
이천=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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