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말하는 수시변경안 영향
수도권 A고교 교장은 이달 말 시행을 검토했던 ‘교과별 심화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통상 학기마다 특정 과목에 소질을 보이는 일부 학생을 따로 소집해 과학실험, 정책토론 등 심화교육을 실시하고 학생부에 기록하는데, ‘비교과전형 대폭 축소’를 골자로 한 대학들의 수시 변경안이 줄줄이 발표된 후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A교장은 14일 “특목고나 자사고도 아닌 일반고라 교과별 심화활동반이라도 운영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대비해왔는데, 대학별 변경안이 발표되면서 1학기는 접게 됐다”면서 “서울대가 지역균형선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해 학종 비교과 영역 경쟁이 치열할 텐데, 이걸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학입학 수시 원서접수(9월 23일부터)를 3개월 앞두고 서울 주요 대학들이 수시모집 변경안을 발표하면서 학교마다 유·불리해질 전형을 찾는데 비상이 걸렸다. 등교 연기로 입시에 불리해진 고3들을 위해 내놓은 구제책이지만, 오히려 역차별 논란을 부추기고 입시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3 구제책을 가장 먼저 내놓은 연세대는 2021학년도 수시 학종에서 고3 수상경력·창의적체험·봉사활동 실적을 반영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여파로 각종 모임과 대회 등이 불가능한 상황을 반영했지만, 수도권 B여고 교사는 “내신 반영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학생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정성평가한다는 학종의 기본 취지를 무시한 역효과도 함께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대로 서울대는 수시 지역균형선발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종전 ‘3개 영역 2등급 이내’에서 ‘3등급 이내’로 완화하면서, 비교과영역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재수생과의 역대급 수능성적 격차가 예상되는 데에 따른 방안이지만, 고교 교사 다수는 이 변경안이 “농어촌 학생에게만 혜택이 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A고 교장은 “지역균형선발제도는 학교마다 2명을 추천할 수 있어 통상 문·이과 전교1등을 추천하는데, 수능 2등급(7%)에 들지 않은 학생이 수도권에서 전교 1등할 수가 없지 않냐”면서 “내신과 수능 등급 차이가 큰 농어촌 학생들에게는 혜택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대학이 고3 구제책으로 비교과 영역 축소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돼,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혼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수시 면접을 비대면으로 치르기로 한 고려대는 질문을 사전 공개하고 학생이 직접 답변을 녹화해 온라인 탑재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수도권 한 고교 교사는 “교수 부모가 수행평가를 대신해주는 것과 뭐가 다르냐”면서 “강남, 목동 같은 사교육 중심가 학생들이 가장 반길만한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대학들이 수시모집 석 달을 앞두고 ‘게임의 룰’을 바꾸면서 대학별 전형계획에 따라 착실히 준비해 온 수험생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교육부는 학종 자료에 ‘등교 중지’ 등 코로나 사태에 따른 학사 변동 사항을 기재하는 방안을 다음 달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제는 앞으로 어떤 대학이 어떤 변경안을 발표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며 “각 대학은 최소한 수시모집안을 변경할지 여부를 이른 시일 안에 발표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대표는 “지금이라도 대학교육협의회 등을 통해 변경안을 일괄 통합 발표해 혼선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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