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메신저’의 변심, 1인칭 화법 쓰며 원색적 비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2인자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 메신저’였던 김 제1부부장은 6월 들어 거침없는 화법으로 대남 압박 선봉에 선 상태다. 특히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업무에 이어 인민군 총참모부에도 ‘지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제1부부장은 13일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세 번째 대남 비난 담화를 공개했다. 3월 3일 청와대의 북한 화력전투훈련 유감 표명을 반박하고,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남북관계 단절을 압박한 데 이어서다.
북한의 ‘로열패밀리’인 김 제1부부장은 이번 담화에서도 과거 북한의 성명 발표 형식을 깨는 파격적인 화법을 선보였다. “나는 어제 우리 통일전선부장이 낸 담화에 전적인 공감을 표한다” 등의 1인칭 화법 사용이 대표적이다. 그는 앞선 담화에서도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6월 4일)”,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 딱 누구처럼…(3월 3일)” 식의 파격 표현으로 기존 북한 담화 형식을 파괴하기도 했다. 사실상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담화를 작성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 권한을 가진 만큼 표현이 자유로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내용 면에서도 ‘2인자’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13일 담화에선 “나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 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여 대적(대남)사업 연관 부서들에게 다음 단계 행동 결행을 지시했다”며 군사행동 지시까지 내리는 파격을 보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14일 “김 제1부부장의 발언이 사실상 명령 수준”이라며 “북한의 각 부처들이 4일부터 지금까지 김 제1부부장의 발언을 경쟁적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제1부부장이 북한 2인자 역할을 공식화하면서 카운터파트를 내세워야 할 정부의 고민도 커졌다. 김 제1부부장의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백두혈통’이자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있어서다. 일단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4일 담화 답신 성격인 1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브리핑은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맡겼다. 김 1차장은 차관급으로 안보정책 최고의결기구인 NSC 사무처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여정 담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는 주체를 신중히 검토했고, 격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1차장이 발표를 했다고 해서 김 제1부부장의 카운터파트로 단정할 순 없다. NSC 차원에서 결론 내린 사안을 NSC 사무처장이 발표하는 건 통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이 접촉을 하는 게 아니어서 굳이 카운터파트를 따질 단계가 아니다”라며 “김 제1부부장의 역할과 지위를 고려할 때, 카운터파트를 누구라고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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