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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분교에는 이승복과 책 읽는 소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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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분교에는 이승복과 책 읽는 소녀만 남았다

입력
2020.06.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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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재훈 사진전 ‘들꽃 피는 학교, 분교’ 류가헌에서 내달 5일까지 

전교생이 1명뿐이었던 경기 화성 우음도의 우음분교에서 1997년 7월 아이 한 명과 선생님 한 명이 폐교식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전교생이 1명뿐이었던 경기 화성 우음도의 우음분교에서 1997년 7월 아이 한 명과 선생님 한 명이 폐교식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두 팔을 몸에 찰싹 붙인 차려 자세의 여덟 살짜리 여자 아이가 손바닥만한 학교 운동장 작은 연단 위 선생님을 방긋 웃으면서 바라본다. 마치 한 편의 연극 같은 이 흑백의 장면은 23년 전 경기 화성시 우음도의 우음분교 폐교식 풍경이다.

이제는 보기 힘든 분교의 옛 풍경이 사진으로 되살아났다. 1982년 시작된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정부는 2018년까지 전국의 3,885개의 작은 학교를 폐교시켰다. 현재 학생 60명이하의 소규모학교는 전국에 1,800여곳(2017년 기준). 지난 30년간 전국 외딴 산골 분교 100여곳의 풍경과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가 강재훈(60)의 전시 ‘들꽃 피는 학교, 분교’가 서울 종로구 효자동 류가헌갤러리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린다.

그가 분교의 풍경을 찍기 시작한 건 1991년. 여행길에 우연히 머문 경남 밀양시 민박집에서 그 집 아들이 촛불을 켜놓고 한자 한자 글자를 정성스레 공책에 꾹꾹 눌러쓰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아직도 이런 곳에서 촛불 켜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구나’라고 흥미를 가졌다. 아이가 다녔던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사자평분교를 찾은 것을 계기로 그의 분교 사진 작업이 시작됐다. “그때 마치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이런 교육 현장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이런 곳을 내가 찾아서 꼭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1998년 아이들이 줄을 잡고 끄는 배를 타고 동강을 건너 강원 정선군 신동읍의 연포분교로 등교하고 있다. 작가 제공
1998년 아이들이 줄을 잡고 끄는 배를 타고 동강을 건너 강원 정선군 신동읍의 연포분교로 등교하고 있다. 작가 제공


1998년 아이들이 이른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산길을 따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명달분교에 함께 가고 있다. 작가 제공
1998년 아이들이 이른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산길을 따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명달분교에 함께 가고 있다. 작가 제공

30년간 밤낮없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 찍은 분교의 풍경은 소박하고 정겹다. 줄배를 타고 강 건너 학교에 가는 아이들 모습(연포분교, 1998),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오솔길을 정답게 걸어가는 아이들 모습(명달분교, 1998), 누나가 어린 남동생을 데려와 돌보면서 공부하는 교실 풍경(연포분교, 1998) 등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분교의 풍경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아이들 등굣길을 찍기 위해 수년간 70번 가까이 찾아간 분교도 있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포즈를 요구하거나 연출해 찍지 않았다. “등굣길을 찍으려고 아이들을 산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거에요.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벌써 학교에 갔어요. 다른 길로 간 거죠. 어떤 날은 논밭을 가로지르고, 어떤 날은 징검다리를 건너고, 어떤 날은 산을 넘어요.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 바로 앞에 내리는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어쩌면 학교에 가는 여정조차 교육의 한 부분 아닐까 싶어요.”

2000년 강원 홍천군 강야분교에서 열린 운동회 부채춤을 준비하는 아이들 중에 여자 한복을 입은 남자 아이들이 섞여 있다. 작가 제공
2000년 강원 홍천군 강야분교에서 열린 운동회 부채춤을 준비하는 아이들 중에 여자 한복을 입은 남자 아이들이 섞여 있다. 작가 제공

그의 사진에는 교육 현장에 대한 예리한 지적들이 담겨 있다. 2000년 강원 홍천군 강야분교에서 열린 운동회 부채춤 장면이 대표적이다. 부채를 든 여자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줄 서 있는 장면에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학교 측은 운동회에서 부채춤을 보이고 싶은데, 아이들이 부족하니깐 남자 아이들에게도 여자 한복을 입혀서 부채춤을 시킨 거에요. 사진을 찍으려니 아이들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인 거에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재미있게 놀려고 하는 게 운동회인데, 그런 게 아니었던 거죠.”

1993년 폐교된 전북 진안군 신암분교에 책보를 옆에 낀 이승복 동상이 우두커니 서 있다. 작가 제공
1993년 폐교된 전북 진안군 신암분교에 책보를 옆에 낀 이승복 동상이 우두커니 서 있다. 작가 제공

분교의 풍경은 학교의 본질을 되묻는다. 코로나19로 학교는 문을 닫고,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시는 분교에 쓸쓸하게 서 있는 이승복 동상의 뒷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폐교가 된 분교에 딱 두 사람만 남아요. 반공소년 이승복과 책 읽는 소녀에요. 정부가 반공 교육과 독서권장을 앞세워 두 사람의 동상을 학교마다 세웠던 거죠. 정작 학교에 와야 할 아이들은 없고, 교육 현장에 그런 동상만 남길 건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어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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