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훌륭한 전염병 소설이 가르쳐 주는 것’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는 과거 역사에 기록된 페스트 및 콜레라 유행 사태와 과연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까. 터키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비슷한 점은 차고 넘칠 만큼 많다”고 말한다. “병원균과 바이러스가 똑같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병에 맨 처음 대응하는 방식이 언제나 똑같기 때문”이다.
최근 문예지 ‘릿터’ 24호에 게재된 파묵의 글 ‘훌륭한 전염병 소설이 가르쳐 주는 것들’은 코로나19를 비롯해 각종 역병의 재난을 마주한 인류의 대응과 그 변화 양상을 문학사 안에서 찾는다. 지난 4월 23일 파묵이 ‘뉴욕 타임스’에 발표한 글을 장성주 번역가의 번역으로 옮겨 실었다.
파묵이 이 같은 글을 쓴 것은 그가 지난 4년간 ‘역병의 밤(Nights of Plague)’이라는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역병의 밤’은 이른바 ‘3차 페스트 범유행’이라 불린 가래톳 페스트 유행 사태가 발생한 1901년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과거 페스트, 콜레라는 어떻게 같을까. 파묵은 ‘부정’과 ‘왜곡’, ‘조작’에서 첫 번째 공통점을 발견한다. 대니얼 디포가 1772년 쓴 소설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에서 지역 행정관들은 “페스트 사망자의 숫자를 실제보다 적게 보고하려고 사인을 다른 질병으로 위조”한다.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1827년 발표한 소설 ‘약혼자들’에서 통치자는 “감염 확산의 증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전염병의 위협을 무시하고 심지어 지방 귀족의 생일 축하연조차 취소시키지 않는”다.
파묵이 발견한 또 다른 공통점은 ‘소문’과 ‘거짓정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소문은, 바로 병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테네의 역병이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처음 발생했다고 언급한다. 파묵은 코로나19가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 감행한 경제 보복”이라던 터키 한 간부의 말을 덧붙이며 “병은 외국의 것, 외부에서 들어온 것, 악한 의도를 띠고 전해진 것”이며 “최초 전파자의 신원을 추측하는 소문은 언제나 가장 깊숙이 퍼져서 가장 널리 회자된다”고 꼬집는다.
근거 없는 소문과 애국주의, 종교, 민족, 지역 정체성에 기반한 비난은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에게는 “방대한 양의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있다. 매일 인터넷과 TV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희생자들을 지켜보고 애도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파묵은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가능해진 ‘연대감’과 ‘겸허함’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포는 우리를 고독에 빠뜨리지만, 모두가 비슷한 수난을 똑같이 겪는다는 깨달음은 우리를 저마다의 고독으로부터 끌어낸다. (중략) 현실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연대감은 바로 여기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단서인 겸허함을 발견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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