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의료인 학대 신고 땐 피해 아동 즉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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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의료인 학대 신고 땐 피해 아동 즉시 분리

입력
2020.06.1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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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분리조치 강화 등 대책 논의 

 피해 아동 82%가 원가정 복귀 

 가방에 갇혀 숨진 천안 9세 아동도 

 의료진이 신고했지만 재학대 당해 

 

계모에 의해 여행 가방에 7시간 넘게 갇혔다가 지난 3일 세상을 떠난 충남 천안 초등학생 A(9)군의 죽음은 막을 기회가 있었다. 숨지기 한 달 전쯤 A군이 학대로 인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의료진은 몸에 든 멍을 발견하고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피해 아동이 원치 않고 부모가 반성하고 있다며 가정에서 분리하지 않았고, A군은 결국 숨을 거두고 나서야 이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체 아동학대 중 ‘재학대’ 발생 비율과 학대 피해 아동 조치 현황

A군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의료인이 아동학대를 의심해 신고하거나 기존에도 학대 신고가 접수됐던 사안이면 해당 아동을 가정과 즉시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발생하지만, 피해 아동 10명 중 8명 꼴로 집으로 돌아가는 데다 학대가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해 국가가 직접 개입, 가해자인 부모와 피해 아동을 떨어뜨려 놓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제7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논의하면서 아동학대가 발견되는 즉시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는 ‘즉각 분리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의료인이 아동 학대로 의심 신고를 하거나, 앞서 아동 학대 신고 전례가 있는 경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인이 육안으로 멍 같은 상처를 확인해 아동학대를 신고할 경우나 재신고 사례일 경우 등에는 아동의 의사와 관계 없이 무조건 분리시키는 내용을 담은 지침 마련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아동복지법상에도 학대 피해자인 자녀를 부모와 분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으나 그 기준이 모호해 현장에서 실제 분리가 적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기관의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발생 장소는 대부분 가정(80.3%)이지만, 피해 아동의 82.0%는 원가정으로 돌아간다. 범죄 발생 장소에 아이들이 다시 떠밀려 들어가는 셈이다.

계부와 친모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당한 9세 피해 초등학생 거주지인 경남 창녕군의 한 빌라 모습. 피해 학생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집 베란다(오른쪽) 난간을 넘어, 옆 집(왼쪽)으로 탈출했다. 연합뉴스

아동 학대는 반복된다는 점에서도 즉각 분리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8년 전체 아동학대 사건(2만4,604건) 중 재학대는 10.3%(2,195건)에 달했다.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학대를 경험한 아동들은 심리적으로 부모의 폭력이 자기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폭력은 무섭고 두렵지만 부모가 나를 버리면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특성이 있다”며 “학대 아동의 심리를 고려하면, 부모로부터 안전한 공간으로 분리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즉각 분리제도 마련과 함께 최근 3년간 학대가 신고됐던 아동의 안전을 다시 한 번 합동 점검하기로 했다. 또 원격수업 기간으로 보육ㆍ교육기관이 문을 닫았던 지난 2~5월 중 접수된 학대 신고도 재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학대 고위험군인 가정양육 중인 만 3세 아동, 예방접종 및 영유아 건강검진 미수검 대상자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한다. 아울러 8월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학대 피해 아동 쉼터 확대 △전문가정위탁제도의 법제화 등 아동 보호를 위한 범부처 종합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유 부총리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는 막중하고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천안과 창녕에서와 같은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아직도 아동학대를 ‘범죄’로 보지 않고 ‘아동복지’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며 “아동학대를 부모 교육, 상담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안일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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