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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거센 반항 안 했다고 ‘당하는 연기’와 ‘실제’ 구분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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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거센 반항 안 했다고 ‘당하는 연기’와 ‘실제’ 구분 못할까

입력
2020.06.13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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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상황극’ 실행범 1심 무죄 논란

확인 없이 강압적 성관계… 휴대폰 빼앗아 강가에 버린 점 등

피해자와 채팅한 것이 아님을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 충분해

검찰, 항소심서 고의성 입증 주목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폭행 장면인 것처럼 연출하는 상황극을 해 달라”는 거짓말을 듣고 실제 여성을 찾아가 성폭행한 남성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의 채팅 대화만으로 ‘강간 상황극’이라는 일을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사건에서 법원이 ‘성폭행 실행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며 항소했다. 검찰은 남성이 성폭행 상황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사람의 지시를 실행에 옮겼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용찬)는 지난 4일 채팅 앱을 통해 여성 행세를 하며 성폭행을 유도한 A씨에게 주거침입강간죄를 물어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A씨의 말을 듣고 성폭행을 실행에 옮긴 B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B씨는 ‘성폭행 상황극을 해 보자’는 A씨의 메시지를 받고 A씨의 집 맞은 편에 사는 30대 여성 C씨 집을 찾아가 C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속아 상황극에 참여했을 뿐, 자신의 행위가 실제 강간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도 성관계를 감행한 미필적 고의(범죄의 가능성을 인식했음에도 행동에 옮긴 심리적 상태)가 없었다고 봤다. 세 사람은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는데, 재판부는 “A씨에게 속아 강간범 역할로 성관계를 한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여 유죄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은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지난 11일 항소했다. 검찰은 B씨가 피해 여성을 채팅 앱의 대화 상대자로 착각했다고 보기에는 여러 의문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피해자 C씨가 사전에 약속한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자 돌아가려 한 점 △B씨가 돌아가려 하자 A씨가 다시 ‘올라가서(‘올라와서’가 아닌) 시작하세요’라고 제3자처럼 메시지를 보낸 점 △상황극을 하기로 약속한 게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점 △피해자로부터 휴대폰을 빼앗아 강가에 버린 점 등을 의심스럽게 봤다. B씨가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서 성폭행을 강행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겁에 질려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피해자의 행동을 두고도 검찰과 법원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반항이 강하지 않아 강간을 당하는 연기를 한 것으로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B씨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 이유서를 통해 “법원의 판단은 여성이 강하게 반항하지 않는다면 강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면서 “성폭행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피해자가 겁에 질려 있었다면, B씨가 다시 한번 상황극이 맞는지를 의심해 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도 B씨에게 실제 강간을 저지를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추가 입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소속 한 변호사는 “B씨가 언제부터 범행을 인식했는지 검찰이 추가로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피해자 반응을 근거로 유ㆍ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른 증거로 고의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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