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이 환기시킨 법정 위증의 폐해]
지인 부탁 못 이겨, 금전 대가 받고… 연 평균 1670명 위증죄 기소
사법 진실 눈 가리고 사회 혼란 불러… “엄중처벌 인식 확산시켜야”
“증인으로 신청했어. 나 대신 운전했다고 증언 좀 해 줘.”
2016년 12월 전남 나주에 거주하는 A씨는 지인 B씨를 만나 이 같은 부탁을 건넸다. 5개월 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그는 당초 벌금형 약식기소를 당했지만, 무죄 판결을 노리고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였다. 법정에서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려 한 것이다. B씨는 실제로 광주지법에 출석해 “집에서 쉬던 중 ‘술에 취했다’는 A씨 전화를 받고 내가 그쪽으로 이동해 대신 운전해 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사태는 두 사람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검찰의 위증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B씨는 허위 증언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고, 위증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9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수사망을 피해 도피 생활에 나선 A씨도 결국 지난해 5월 위증교사 혐의로 체포돼 1심에서 ‘징역 10월’의 철퇴를 맞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긴 했지만, 실형은 피하지 못했다. 벌금형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꾸며낸 게 본인의 철창 신세는 물론, 지인의 형사처벌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기억에 반하는 허위 증언, 곧 위증의 대가는 이처럼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위증 사건은 여전히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2019 검찰연감’을 보면, 2000년대 들어 형법상 위증죄로 ‘기소된’ 인원만 연 평균 1,676명에 달한다. 법정에 선 증인이 오른손을 들고 외치는, 형사소송법 제157조 2항에 정해진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는 증인 선서가 무색할 지경이다. ‘위증죄 엄벌’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도 위증사범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제21대 국회 출범과 함께 정치권과 법조계 이슈로 떠오른 핵심 키워드도 바로 ‘위증’이다. 진원지는 다름아닌 10년 전 검찰 안팎을 크게 들쑤셨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다. 한 전 총리는 2015년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징역 2년)가 확정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 증인이 내놓은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케 만드는 주장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일부 당사자는 “검찰이 위증을 교사했다”고까지 말하는 상황이다.
◇한명숙 사건 또 논란, 핵심은 ‘위증’
때문에 이번 논란은 사법적 판단이 끝난 한 전 총리 사건의 실체(불법 자금 수수 여부)보다는, 새로 불거진 위증 의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양새다. 물론 당시 검찰 수사팀은 “터무니없는 허위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2010년 12월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건넸다는 검찰 진술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던 고(故) 한만호(2018년 사망) 전 한신건영 대표의 위증으로 홍역을 치렀던 검찰로선 또다시 골머리를 앓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검찰에 불리한 주장을 내놓는 인물들은 모두 과거 한씨의 감방 동료들로, 10년 전엔 한 전 총리의 혐의 입증에 동원됐기 때문이다.
김필성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는 “검찰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이 사실이거나, 이 과정에서 강압 또는 가혹 행위가 있었다면 한 전 총리 사건은 재심도 가능하다”며 “당시 검찰 수사가 적법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 규정된 재심 사유(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게 증명됐을 때)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검찰도 현재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등 검사 3명을 투입해 이 부분을 조사하고 있다. 모해위증이란 상대방이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받도록 할 목적의 거짓 진술을 뜻한다.
10년 전 사건을 두고 또다시 위증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위증의 폐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사법 절차와 기능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선 우리 사회 전체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고 사회적 비용도 증가시키는 탓이다.
◇실체적 진실 방해… 억울한 피해자도 양산
거짓 증언의 가장 큰 폐단은 모든 위증 사건 판결문에 기재돼 있듯, ‘사법기관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법원을 속이고, 억울한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2013년 같은 교회 목사 지모씨를 비방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한 혐의(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로 기소된 유모씨의 사례가 그렇다.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그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항소했다. 그런데 2심 재판 과정에서 1심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였던 지씨의 법정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나 버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인용했다. 지씨의 거짓말이 1심 재판부의 ‘눈’을 가린 셈이다.
위증에 따른 불법 행위의 책임은 민사 재판에서도 인정된다. 2017년 8월 광주지법은 유씨가 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씨의 허위 진술로 유씨는 수사ㆍ재판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유죄 판결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시달렸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지씨로선 위증 한마디로 인해 형사사건 유죄(벌금 300만원형)와 민사소송 패소(위자료 300만원 지급)라는 ‘이중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위증의 심각성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낮다는 게 법원의 진단이다. 올해 4월 말 부산지법 판결문은 사법부의 우려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회사원 C씨는 부산 외할머니댁에 머무르다 알게 된 D씨의 폭행 사건에 작년 4월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웃의 멱살을 잡고 흔든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기소를 당한 D씨가 “당시 현장에 있었으니 내가 멱살 잡는 모습을 못 봤다고 증언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인정’에 끌려 D씨 요청을 들어줬지만, 위증 사실이 들통난 C씨는 법의 심판을 받고 말았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선 법정에서 선서한 후 허위증언을 하는 데 대한 죄의식이 낮다”고 꼬집으면서 C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위증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다르지 않다. 2016~2017년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14명이 국회 국정조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며 허위 증언을 한 혐의로 무더기 기소를 당한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조 전 장관 측은 1심 유죄 판결 후 2심에서 “증인 선서를 하지 않은 날,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고 답했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을 폈다가 빈축을 샀다. 특검은 “최초 증인 선서 이후 추가 기일에선 선서하지 않아도 위증죄 성립 여부에 문제가 없다는 판례가 있다”고 반박했고, 2심 재판부의 판단도 이와 같았다.
◇거짓 증언 대가로 금전 주고받기도
한국 사회에 위증이 만연해 있는 배경으로는 한국인 특유의 온정주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문화적 요인이 꼽힌다. 하지만 ‘이해 관계’에서 비롯되는 위증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거짓 증언의 대가로 금전을 주고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죄질이 훨씬 나쁘다는 점에서 형량이 높아지곤 한다.
절도 혐의로 부산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E씨는 2012년 3월 상습범 가중처벌을 피하려고 동료 재소자 F씨에게 “형이 내 죄를 덮어 쓰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재판에 출석해 형이 백화점에서 등산복을 훔친 것이라고 말해 주면 형의 형량이 1년 늘어날 때마다 2,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F씨는 법정에 나가 “사실은 내가 E에게 대신 죄를 뒤집어 써 달라고 부탁한 것”이라며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 자백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부정한 거래는 들통났고, 이듬해 5월 부산지법은 위증을 교사한 E씨에게 징역 10월을, 위증을 한 F씨에게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일반적으로는 위증교사 범인이 위증한 사람보다 더 중한 처벌을 받는데, 반대의 형량이 내려진 것이다. 위증죄를 판단하는 기준에 ‘경제적 대가 수수’가 특별가중요소로 규정돼 있는 탓이다. 실제로 F씨는 E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위증 사건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로 나타났다. 2015년 위증 또는 모해위증 혐의(교사ㆍ방조 포함)의 피의자로 신규 입건된 인원은 5,540명이었던 데 반해, 지난해에는 4,236명까지 감소했다. 기소 인원 역시 1,688명에서 절반 수준인 889명으로 줄었다. 다만 2018년과 2019년만 이례적으로 적었을 뿐, 2005~2017년에는 매년 1,500명 이상이 재판에 넘겨졌다. 2009년에는 2,357명이 기소돼 역대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1심 선고 형량을 분석하면 벌금형 비율이 전체 피고인의 63~72%로 압도적 수치를 보였다. 징역형(실형+집행유예)은 18~26%에 그쳤다. 눈에 띄는 사실은 1994~2005년 위증죄 통계와 비교할 때, 징역형 비율이 대폭 하락했다는 점이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07년 말 발표한 ‘위증 방지를 위한 방안 연구’를 보면 해당 기간 위증죄 1심 선고 사건 가운데, 벌금형과 징역형의 비율은 각각 47.1%와 41.2%로 큰 차이가 없었다. 처벌 강도가 오히려 약해지는 이런 흐름이 위증 사범을 줄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위증죄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며, 모해위증죄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만 규정돼 있을 뿐 벌금형은 없다.
◇사법방해죄 신설 등 대안 거론
위증 범죄 방지를 위한 제도적 방편으로는 우선 ◇수사기관에서의 허위 진술 처벌 조항(사법방해죄) 신설 ◇선서에 의하지 않은 허위진술죄 신설 및 선서 이후의 위증은 가중처벌 ◇위증에 대한 법정형 상향 조정 등이 거론되고 있다. 법원이나 국회 등에서 증인 선서를 한 이후의 위증 행위만 처벌하도록 정한 현행법의 ‘공백’을 메우자는 얘기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정에서의 위증은 국가 사법 기능을 마비시키고, 재판을 농락하는 것으로 국가적 응징을 해야 한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는 ‘수사기관 허위 진술’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수사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010년 법무부와 검찰이 사법방해죄 도입을 추진했으나, 이 같은 반대 여론에 막혀 성사되지 못했다. 공판중심주의에 역행하는 방안이라는 지적도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좀더 이뤄질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 해법으로 ‘실무 차원에서의 엄벌’ 추세 확립이 시급하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박미숙 선임연구위원은 “사실 지금의 위증죄 법정 형량도 낮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제 판결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위증죄를 무겁게 처벌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위증사범을 엄단하기 위해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하는 증인을 수시로 적발하고, 전담수사반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위증사범에 대해선 약식기소를 지양하고 정식 기소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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