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 부모에게만 맡겨 사각지대 아동 존재
법무부 출생통보제 도입 추진…기관 간 이견 있어 난항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법적 존재로 등록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12일 친아버지를 상대로 낸 친생자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카라 보스(38ㆍ한국명 강미숙)씨 사례에서 보듯, 재판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혈육을 찾을 수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출생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부모 탓에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아동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지난달 8일 국내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을 누락 없이 국가기관에 알려야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권고했다. 출생과 동시에 통보가 이뤄지면 출생신고 의무자가 신고를 하지 않아도 국가기관이 가족관계등록부에 직권으로 등록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런 보편적 출생등록은 모든 아동이 공적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1항에 명시된 기본 권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자녀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도록 정해 부모가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아동의 권리보호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출생신고 제도가 낳는 가장 큰 문제는 아동 학대다. 친아버지와 의붓어머니 학대로 숨진 ‘신원영군 사건’ 이후 2017년부터 교육당국이 초등학교 예비소집 대상자들을 전수조사하지만, 출생등록이 안된 아이들은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공기처럼 누리는 보육ㆍ교육ㆍ의료 등 기본적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제도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생통보제 도입을 주요 추진과제로 담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강미숙씨처럼 해외 입양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권리, 미혼부도 쉽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권리,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자녀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요구들이 밑바탕이 됐다.
대법원도 최근 보편적 출생등록권을 인정한 첫 판결을 내려 제도 도입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사실혼 관계의 아내가 외국인이라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던 미혼부 A씨의 출생신고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의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절차가 복잡하다면, 이는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법제개선위 권고를 토대로 가족관계등록법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동권리보호단체 간에도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구체적 안에는 의견이 갈려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법제개선위 권고가 난민ㆍ불법체류자 등 외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반쪽자리 대책이라는 한계도 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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