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사망한 지 3주가 지났다. 미국 50개 모든 주, 400여개의 도시에서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제되지 못한 반응과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대립이 극에 치달으면서, 인종문제가 미국 대선의 핵으로 부상하는 듯하다.
이번 시위는 규모, 강도, 빈도의 면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크다. 매일 한 번씩 꾸준히 시위를 벌이는 곳이 많고, 주말에는 하루 여러 번 시위를 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대도시나 대학 도시를 중심으로 TV 속 이벤트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번에는 인구 1만명 미만의 보수적인 도시까지 가세했다.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면 실제로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1960년대 민권운동 시위가 있었던 도시에 사는 백인은 시위가 없었던 도시에 사는 백인보다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더 많이 지지하고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덜 가지고 있다. 이번과 유사한 일이 발생했던 2014년에도 시위가 있었던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인종주의에 더 많이 반대하게끔 변했다.
연방 하원의원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시위가 발생할 경우, 흑인 관련 법안에 찬성할 확률이 높아진다.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시위가 일어나면, 연방 대법원이 흑인과 관련된 케이스를 더 많이 선고하는 경향도 있다. 모든 대통령은 흑인에게 우호적인 연설을 해 왔으며, 많은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이번 시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건을 전후로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을 지지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10%포인트 증가했고, 흑인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의견도 20%에서 41%로 크게 늘었다. 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즉각적이고 대규모의 행동을 약속했으며, 여러 버전의 경찰개혁 법안이 발의되었다. 심지어 진실위원회(Truth Commission) 설립안도 나왔다.
다만 11월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첫째, 이번 시위가 진정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인종문제는 묻히고 다른 이슈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시위와 운동이 있었지만 이로 인해 대선이나 중간선거의 결과가 크게 바뀐 적이 없다. 이 이슈로 인해 흑인의 투표율이 크게 상승한 적도 없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흑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과도한 법 집행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생각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경찰과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자신들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이슈에 대한 신념을 가지게 되는데, 플로이드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이 신념은 이미 확고하다.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들 중 54%가 이번 시위를 지지하고 22%가 반대한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 차이가 더 커서 69% 대 13%이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39%만이 찬성하고 38%는 지지하지 않는다. 경찰의 폭력이 더 심각한지, 경찰을 향한 폭력이 더 심각한지도 의견을 조사해 보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75%는 경찰이 더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54%가 경찰에 대한 폭력이 도를 넘었다고 본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이번 시위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인종 간 갈등이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더 심각해졌는지 물어보았다. 흑인의 75%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백인의 45%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같은 여론조사기관에서 4년 전에 인종 간 갈등이 오바마 대통령 때문에 더 심각해졌는지도 물어보았는데, 흑인의 37%, 백인 59%가 동의했다. 누가 대통령인지에 따라 인종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정반대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이번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예상 가능하다. 우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프레임할 것이다. 플로이드의 사망에 일정 부분 경찰의 책임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다수 선량한 경찰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무법천지’ 공포 마케팅도 예상된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일부에서 추진중인 경찰개혁법안이 ‘과도’하게 비쳐질 때까지 기다린 후, 범죄에 취약해질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서두를 것이 없다. 흑인들의 낮은 투표율 때문에 주요 격전지 주에서 아깝게 패배했던 2016년을 교훈 삼아, 이번 플로이드 시위에 자극받은 흑인과 젊은 층이 더 많이 투표하게끔 독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흑인 부통령 후보를 지명할 수도 있다. 마이애미 경찰서장을 역임한 밸 데밍스(Val Demings) 연방하원의원,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을 지낸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연방상원의원, 그리고 2018년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서 아깝게 패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Stacey Abrams) 등이 물망에 오른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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