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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작은 관심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입력
2020.06.13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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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버스를 기다리는데 등이 굽은 할머니께서 다가오시더니 폴더폰을 대뜸 내미신다. 아이 같은 말투로 ‘도와주세요, 이것 좀 받아주세요.’ 하신다. 전화를 받아보니 할머니의 가족분이었고, 할머니는 혼자 집을 나오셨다가 길을 잃으신 모양이다. 이곳이 어딘지 알려 드리고 전화를 끊으니. ‘고맙습니다.’ 하신다.

도움이 필요할 때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다.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할머니를 만나고 나니 최근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가방 안에 갇혀 있다가 끝내 숨진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가족으로부터 위험에 처했지만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도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부모로 인한 아동 학대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개학이 미뤄지고 재택근무가 늘면서 아동 학대 신고 건수가 전년 대비 13.8% 증가했다고 한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이 지져지는 등의 끔찍한 학대를 당했다가 도망 나와 인근 주민에게 발견된 초등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른과 한 공간에 있으면 아이가 더 안전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심지어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위험한 경우라니.

어린아이들은 아직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모른다. 영유아를 비롯한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더라도 신고를 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도와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어쩌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못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 방치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국제아동인권센터의 김희진 변호사는 이렇게 증가하는 아동 학대 사건의 대책 중 하나로, 모든 사람이 민감해져야 할 때라며 전 국민이 아이의 옷차림과 표정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어른이 주변의 아이들을 관심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행복의 조건으로 공동체 감각을 언급했다. 이는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을 뜻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 베풀어야 하는데 이러한 공동체 감각을 키울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공동체 감각’을 키울 때 아이들도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이 보장된 환경은 아들러가 말하는 것처럼 어른들 개인의 행복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 집단문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 감각과 가까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혈연중심주의로 인해 ‘내 가족, 내 아이’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동 입양률이 해외에 비해 낮은 이유도 그렇다. 내 핏줄에 대한 고집, 그리고 자식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또 돌본다는 것은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성장을 돕는 것이다. 나를 위한 소유물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길러 내는 것이다. 하지만 혈연에 연연하다 보니 입양에 관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이웃의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관심을 갖기도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가 아이에게 안전한 어른이 되어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물론 제 몸 돌보기도 힘든 빡빡한 세상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큰 노력이 아니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보이는 것. 그러니까 의심스러운 상처가 있거나 너무 말랐거나 표정이 위축되어 있지는 않은지 또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래야 죄 없는 아이가 무력하게 죽어 가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모든 아이를 내 아이처럼 관심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힘을 가진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아닐까 한다.

김혜령 작가ㆍ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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