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민족 내부 문제” 선 긋고 “미국과 계산 남았다” 북미 대화 여지
6ㆍ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주년을 하루 앞둔 11일 북한이 미국에 ‘공개 경고장’을 발송했다. 대북전단 문제를 고리로 남측을 압박한 데 이어 미국에도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다만 비난 수위는 조절하는 모습이어서 북미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발표를 통해 미국을 맹비난했다. 북한은 “북남관계는 민족 내부문제”라고 선을 그은 뒤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 관련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권 국장은 “미국이 실망을 말하는데 2년간 배신과 도발만을 거듭해온 미국과 남측에 대한 우리의 분노에 비할 수 없다”며 “미국과 우리가 계산할 것도 적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1월 미국 대선을 거론하며 “미국이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입 다물고 제 집안 정리부터 하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앞서 미국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북측의 남북 연락채널 차단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 질의에 “우리는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권 국장은 미국 측 논평을 두고 “부질없는 망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은 북미관계에 여전히 미련이 있다는 뜻도 암시했다. 최근의 대남 압박 국면을 주도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처럼 강력한 메신저가 아니라 부서 담당자인 권 국장을 내세웠고, 공식적인 성명ㆍ담화가 아닌 대외 관영매체 인터뷰 형식 발표를 취하면서다. 비난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시에 이날도 대내매체인 노동신문을 통해 대남 규탄을 이어갔다. 김 제1부부장이 탈북민 단체 대북전단 살포 관련 남측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4일 담화 이후 일주일째다.
이처럼 북한이 6월 들어 대남ㆍ대미ㆍ대중 관련 다층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는 것은 ‘준비된 계획’을 실행하는 차원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 협상을 위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2018년 이후 북미ㆍ남북관계에 기대를 걸었으나 협상의 성과가 없었고, 2020년 신년사 대미 정면돌파전 선언 후 고민했던 전략적 위치 재설정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미중 갈등 국면에서 친중 행보로 ‘생존형 외교’를 하되, 대미 협상 여지를 남기고, 남측과 긴장구도를 만드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