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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냉동삼겹살의 부활

입력
2020.06.1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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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예전 고깃집 삼겹살은 으레 냉동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오죽하면 냉동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생삼겹살’이라는 말이 인기를 끌었겠는가. 그 전에는 대다수가 냉동이었다는 뜻이다. 왜 냉동으로 팔았는지는 설이 많다. 첫째는 부패 방지다. 고기가 언제 팔릴지 모르니 상하지 않도록 얼려두었다는 설이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집은 그럴 수 있었겠다. 삼겹살이 요즘처럼 전문점에서 파는 경우가 적었고, 대개는 일반 식당의 메뉴 중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돈(母豚) 판매설이다. 출산 효율이 떨어진 어미 돼지는 고기로 팔리는데, 육질이 질기다. 질긴 느낌을 줄이기 위해서 얼린 후 얇게 썰어서 내다 보니 냉동으로 파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는 설이다. 셋째는 가짜 삼겹살설이다. 삼겹살이 부족하여 다른 부위의 고기를 삼겹살처럼 보이게 층층이 쌓아 눌러 굳힌 후 팔았는데 얼리지 않으면 고기가 도로 분리되므로 냉동해서 팔았다는 설이다. 넷째는 냉동으로 팔아야 빨리, 많이 팔 수 있는 가게의 속사정이었다는 설이다. 고기는 얇게 썰어야 빨리 구워진다. 바싹 익혀야 하는 돼지고기는 굽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만큼 먹는 시간도 길어진다. 냉장한 삼겹살은 얇게 썰기 힘들다. 냉동해서 기계로 썰면 엄청 빠르고, 손님도 빨리 구워 먹을 수 있었다는 설이다. 빨리 구워져야 많이 먹으니까 매출도 올랐겠다.

당시 유통과정에 대한 설인데, 부분육 판매 시장이 생기면서 삼겹살을 따로 모아 냉동해 두었다가 고깃집에 납품했다는 얘기도 있다. 도시에서는 삼겹살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도 냉동 유통이 많아서 삼겹살 냉동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회고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꼼수’설이다. 냉동삼겹살 시대에는 무게를 달아서 파는 개념이 없었다. 주인 맘대로 그냥 1인분, 2인분이라 불렀다. 얇게 저며야 ‘고깃점’의 개수가 많다. 두툼한 생삼겹살 일인분이 열 쪽이라면, 냉동하면 더 많이 저밀 수 있어서 두 배 이상 많아 보였다. 냉동해야 얇게 기계로 썰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판에 깔아보면, 차이가 확 난다. 흥미로운 가설이다.

어쩌면 냉동에서 생삼겹살로 기호가 이동한 것은 이런저런 유통의 속사정이라기보다 품질을 앞세우는 시대 변화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소고기 등심구이 시장에서도 냉동 로스구이가 아니라 ‘생등심’이라는 말이 대세가 된 것도 대체로 경제 사정이 좋아진 80년대 이후의 일이니까 말이다. 육즙이라는 말이 회자된 것도 그러고 보면 근자의 일이다. 고기 굽기에 과학의 논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생삼겹살을 구우면 수분 손실도 적고 육즙도 덜 빠진다. 이런 고기의 과학적 이해가 널리 퍼지고, 냉장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냉동삼겹살이 자연스레 시장에서 밀려난 것이 아닌가 싶다.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쫄깃한 맛을 즐기기에는 생삼겹살이 낫다고 하니까. 흥미롭게도 최근 냉동삼겹살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레트로’라는 유행의 덕이다. 유행을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냉동삼겹살은 ‘냉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크게 퍼져나갔다. 가게도 옛날 노포 분위기가 나게 꾸민다. 유행에 민감한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많이 들어온 걸 보면, 진짜 대세가 맞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유행과 관계없이 냉동삼겹살만 꾸준히 팔아온 가게들도 있다. 신촌 대구삼겹살이나 을지로의 문경등심 같은 가게들이다. 수십 년이 되어 노포에 들어가는 집들이다. 시절의 기호가 어찌 되었든, 원래부터 냉동삼겹살을 팔아온 집들에 긴 줄이 선다. 오래되고 두툼한 주물 불판을 가스불로 달구고, 매콤한 파절이에 상추로 쌈을 싸던 옛날 삼겹살이다. 고기를 얼추 먹을 무렵 김치와 김가루를 뿌린 즉석 볶음밥도 냉동삼겹살 시대의 유물이다. 한때, 저 고기를 두 점씩 집어먹으면 친구들의 눈총을 받았다. 가난했던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살아난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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