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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에 맞춰 떼창과 춤을 … 첫 앨범 낸 판소리 댄스그룹 ‘이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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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에 맞춰 떼창과 춤을 … 첫 앨범 낸 판소리 댄스그룹 ‘이날치’

입력
2020.06.11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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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이날치. 왼쪽부터 이철희(드럼), 권송희(보컬), 장영규(베이스), 이나래(보컬), 신유진(보컬), 정중엽(베이스), 안이호(보컬). 잔파 제공
밴드 이날치. 왼쪽부터 이철희(드럼), 권송희(보컬), 장영규(베이스), 이나래(보컬), 신유진(보컬), 정중엽(베이스), 안이호(보컬). 잔파 제공

“범 내려온다 / 범이 내려온다 / 송림 깊은 골로 / 한 짐생이 내려온다”

용왕의 병을 고치러 토끼의 간을 찾아 뭍으로 올라온 별주부가 호랑이를 만나 위기에 빠지는 대목. 판소리 ‘수궁가’의 낯선 어휘들에 어려운 시험문제라도 만난 듯 움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혁신적인 댄스 음악 밴드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 온다’ 가운데 일부다.

판소리에 맞춰 댄스 음악을 하는 밴드라니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이날치가 최근 공개한 데뷔 앨범 ‘수궁가’를 듣는 순간 일단 춤이 저절로 흘러나온 뒤, 고개가 끄덕여진다. 판소리와 댄스 음악이 이토록 찰떡 같이 어울릴 줄이야. 정좌한 채 들어야 할 것 같은 판소리를 리듬감 넘치는 그루브와 함께 들으니 눈 앞에서 별주부와 토끼가 추격전을 펼치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미국의 힙합에 대한 우리만의 응답이 있다면, 그건 한국 힙합이 아니라 이날치가 아닐까.

이날치란 이름은 19세기 후반 활동한 판소리 명창에게서 따왔다. 2018년 말 음악극 ‘드라곤 킹’에서 소리꾼 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 장영규 음악감독이 만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음악극 하러 모였는데, 완성하고 보니 반응이 좋은 거예요. 그럼 극은 빼고 음악만 해보자 싶어서 공연까지 했습니다. 첫 공연 땐 밴드 이름도 없이 했어요.”(장영규 안이호)

지금은 밴드에 없는 박수범까지 다섯 명의 소리꾼과 베이스 연주자 장영규에다 또 한 명의 베이시스트 권중엽, 드러머 이철희가 가세했다. 장영규는 영화 ‘부산행’ ‘곡성’ ‘암살’ 등의 음악을 만든 국내 대표 영화음악감독이다. 이철희는 장영규와 민요 록 밴드 ‘씽씽’에서 함께 활동했다. 권중엽은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으로 최근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음악을 맡았다.

국악계 젊은 명창과 실력파 연주자가 만났으니 무대를 뒤집어버렸다. 지난해 1월 서울 홍대 부근 클럽에서 벌인 첫 난장은 화제를 불러 모았고, 지난해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를 시작으로 서울인기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 등에서 계속 무대를 이어갔다. 여기다 온라인 상으로 공연 동영상이 퍼지면서 ‘내가 수궁가에 홀딱 빠질 줄 몰랐다’는 팬들이 크게 늘었다. 해외 팬들은 영문 번역까지 찾아가며 이들의 공연에 몰입했다.

판소리를 신나는 댄스무대로 바꾸기 위해선 아이디어를 거듭 짜내야 했다. 한국형 아방가르드 팝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불교음악 프로젝트 비빙, 해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씽씽까지 만들었던 정영규는 밴드인데 기타를 빼기로 했다. 그는 “판소리는 타악기와 소리로 하는 것이니 화성 없이 리듬악기 셋과 목소리로만 밴드를 구성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라곤 킹’에서 불렀던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댄스 음악과 가장 잘 어울려 첫 앨범에 쓰기에도 딱 맞았다. 하지만 보통 4박자를 기준으로 삼은 대중음악과 달리 수궁가에는 7개의 장단이 있다. 이걸 리듬감 있게 2대의 베이스기타와 드럼 연주로 소화해내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처음엔 ‘베이스기타 2대?’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더군요. 두 연주자가 서로 교차하며 연주하니 혼자 하는 것과는 다른 힘이 나오기도 해요.”(정중엽) “판소리 장단에 일부러 드럼을 맞추는 게 아니라 각자 서로의 리듬을 타다 보니 특유의 맛이 나오더군요.”(이철희)

리드미컬한 댄스음악을 위해 소리꾼 1명이 다 하던 소리도 여러 보컬로 나눴다. 이나래는 “보컬 네 명 모두 스승에게서 배운 소리가 달라서 같은 수궁가인데도 쓰는 단어가 다르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며 웃었다. 타루, 타니모션 등을 통해 줄곧 대중음악과 협업을 해온 권송희는 “정통 판소리는 기술적 부담감도 있고 외롭기도 하지만, 이날치에선 다 함께 즐겁게 부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멤버들은 ‘국악의 현대화’ ‘국악의 세계화’ 같은 표현을 부담스러워했다. 애초 목표가 ‘판소리로 춤출 수 있는 재미있는 음악을 하자’였기 때문이다. 안이호는 “아무 편견 없이 편하게 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유진도 “있는 그대로의 리듬을 타며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CD 없이 디지털 음원과 LP로만 내놓는다. 앨범 출시 기념으로 11, 1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유튜브 150만 조회수를 기록한 ‘범 내려온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에 등장했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단원들도 이번 무대에 함께 오른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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