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연합 수도였던 리치먼드
관련 기념물 모두 철거하기로
유럽선 노예제ㆍ제국주의 반성
벨기에 식민통치 국왕 동상 훼손
미국과 유럽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한 분노가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인종차별의 사회구조적 문제에 주목하면서 자연스레 과거 노예제도와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도 의제가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편협한 역사 서술을 조장한다는 반발도 나오지만 “동상이 무너지는 일도 역사”(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울루소가)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버지니아주(州) 리치먼드시는 9일(현지시간) 도심 한복판에 있는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포함한 남부연합 관련 기념물들을 철거하기로 했다. 랠프 노덤 주지사가 전날 리 장군 동상의 철거 계획을 공식화하자 시의회가 곧바로 다른 기념물들의 철거도 결정했다. 리치먼드는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노예제 존치를 주장했던 남부연합이 수도로 삼았던 도시라 이번 결정은 적잖은 상징성이 있다.
보수적인 국방당국에서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 미 국방부는 이날 “남부연합군 장군들의 이름을 딴 부대ㆍ기지명 변경 요구에 대해 국방장관과 육군장관이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변경하겠다는 얘기다. 미 해병대에 이어 해군도 이날부터 인종차별의 상징격인 ‘남부연합기’ 전시를 금지했다.
유럽에선 과거 식민통치와 노예무역에 대한 반성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일 유명 노예무역상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강으로 던져졌던 영국에선 이날 또 다른 노예무역상의 동상이 철거됐다. 벨기에에선 아프리카 콩고(현 콩고민주공화국)를 사유지로 두고 무자비한 식민통치를 했던 옛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이 곳곳에서 붉은 페인트로 뒤덮이거나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대대적인 기념물 철거 과정엔 걸림돌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념적ㆍ정치적으로 백인우월ㆍ인종차별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총기 난사로 9명이 숨졌을 당시 미 전역에서 남부연합 관련 기념물 철거가 추진됐지만 결국 ‘샬러츠빌 극우폭동’을 겪어야 했다. ‘동상은 곧 역사 서술’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플로리다에 있던 남부연합의 상징 ‘올드 조’ 동상 철거 계획은 3만6,000달러(약 4,300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취소된 적도 있다.
그렇다고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진 않을 듯하다. 벨기에의 인권단체 블랙라이브 네트워크의 조엘 삼비 은제바 대변인은 “기념물은 (물리적) 공공장소뿐 사람들의 정신에도 존재한다”면서 “동상 철거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도 “영국에서 제국주의 식민통치 역사의 어두운 면을 축소한 역사교육 내용부터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고 전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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