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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나의 노멀, 당신의 노멀

입력
2020.06.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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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1일 미국 코미디언 지웨 푸무도가 올린 트위터 게시물이 주말 동안 화제가 됐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중심가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시민들 뒤로 인종차별 규탄 시위 행렬이 지나가는 이 모습은 지역 언론 신시내티 시티비트가 포착했다. 푸무도는 이 사진에 “흑인의 삶을 위해 싸우는 미국과 브런치를 위해 싸우는 두 가지 미국이 존재한다”고 적었다. 지웨 푸무도 트위터 캡처
지난 1일 미국 코미디언 지웨 푸무도가 올린 트위터 게시물이 주말 동안 화제가 됐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중심가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시민들 뒤로 인종차별 규탄 시위 행렬이 지나가는 이 모습은 지역 언론 신시내티 시티비트가 포착했다. 푸무도는 이 사진에 “흑인의 삶을 위해 싸우는 미국과 브런치를 위해 싸우는 두 가지 미국이 존재한다”고 적었다. 지웨 푸무도 트위터 캡처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을 이토록 갈구하던 때가 이전에도 있었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그린 가수 이적의 ‘당연한 것들’이라는 노래가 지난주 한 시상식에서 공연된 이후 주말 내 화제가 됐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 눈물을 쏟았다는 감상평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넘쳐났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트위터에서 회자된 미국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 중심가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을 접하고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됐다. 평범한 일상이란 무엇일까. 코로나19가 사라진 뒤 내가 되찾고 싶은 삶의 단면이 다른 이들에게도 사무치게 그리운 바로 그 일상일까.

사진 속에는 주황색 임시 방호벽을 사이에 두고 카페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이들과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규탄 시위 행렬이 묘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코미디언 지웨 푸무도는 신시내티 지역 언론에 실린 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면서 “흑인의 삶을 위해 싸우는 미국과 브런치를 위해 싸우는 또 다른 미국이 있다”는 설명을 붙였고, 이 게시물은 15만번 넘게 리트윗됐다. 카페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백인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달간 굳게 닫혔던 레스토랑의 영업이 재개되자 그토록 그리웠던 평범한 일상인 친구들과의 만남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플로이드 사망으로 미 전역이 들끓던 때인 만큼 이들의 외출은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의 최루탄 발사에 맞서며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친구들과의 주말 브런치’는 사치에 가깝다.

각자의 처지와 그에 따른 일상의 격차가 큰 것은 비단 흑백 갈등이 첨예한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과연 서울 구로동 콜센터와 경기 부천의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경험한 이들도 코로나19 발병 이전 삶을 오롯이 되찾길 바라고 있을까.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 콜센터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면 발음이 부정확해지는 탓에 고객 항의가 들어와 업무에 부담을 느껴 왔다고 했다. 한국 온라인 쇼핑의 자랑인 ‘신속 배송’은 마스크를 착용하면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바삐 움직여야 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 과중이 토대가 됐다.

사실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세상 어디에든 오랫동안 존재해 온 일상 속 차별은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이슈였을지도 모른다. 플로이드 사건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작년 이맘때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의 극장인 퍼블릭시어터에서 본 흑백 갈등을 다룬 연극 한 편이었다. 제목은 ‘화이트 노이즈’, 즉 백색 소음이다. 빗소리처럼 일정하고 넓은 주파수를 지닌 백색 소음은 주인공 레오의 불면증 특효약이다. 연극은 여기에 빗대 인종차별주의가 만들어 내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소음으로 미국 사회가 혼란과 고통, 불의에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작가 수전 로리 팍스는 일례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문화산업으로 소비되는 장면을 담아 “인종차별이라는 바이러스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했던 2019년의 미국이 ‘백인은 가해자, 흑인은 피해자’ 식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훨씬 더 복잡하고 내재화된 인종차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예기치 못한 재앙으로 기존 사회 질서 모두가 부정되고 새롭게 정의되는 ‘뉴노멀(새로운 기준)’시대를 맞게 된 요즘이다. 어차피 익숙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행복감을 주는 새로운 노멀을 함께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김소연 국제부 차장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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