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 사유 “사실관계 소명” 놓고 양측 입장차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영화의 열린 결말 같다.”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정점인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두고 나온 법조계 일각의 한 줄 평이다. 그만큼 검찰과 삼성 변호인단의 해석도 확연히 엇갈렸다. 검찰은 “기소 정당성을 인정 받았다”고, 삼성 측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각자 유리하게 해석했다.
가장 의견이 분분한 대목은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이란 기각 사유다. 대개 고의성과 범죄사실 요건인 ‘범죄혐의’의 소명 여부가 구속영장 발부ㆍ기각 사유로 적시되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사실관계 소명으로 표현됐다.
검찰은 이 문구와 “상당한 증거 확보”라는 영장 판사의 판단 대목을 더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시세조종 등에 대한 수사 성과를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부회장의 책임 유무와 정도를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영장판사 언급에 대해서는 “수사팀이 기소를 하고 법원 합의부에서 평가를 받는 게 맞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되지 않았는데 판사가 굳이 형사 재판 필요성을 거론하진 않았을 것이란 인식이다.
반면 삼성은 “범죄혐의 소명이 안 됐다”며 무리한 영장 청구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기본적 사실관계 말고 피의자의 책임 유무 등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입장문을 냈다.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에 이 부회장이 관여한 혐의는 이례적인 장기 수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으로선 검찰의 보강 수사에 맞서,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은 만큼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며 여론전을 펼 여지도 생겼다. 외부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의 기소 여부 판단을 검찰이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할 명분도 생겼다.
이례적인 기각 사유에 대해 법조계 해석도 분분하다. 영장전담 판사를 지낸 고등 부장판사는 “합병과 회계 변경 등의 이익이 이재용에 간 사실관계는 알겠는데 범죄 고의성 입증이 부족해 사실관계 소명 정도로 나온 것”이라 말했다. 재경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중대 사건 피의자의 구속 여부는 소명의 정도가 더 요구되는데 애매했던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영장판사가 굳이 ‘재판에서 충실한 심리로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을 넣은 것은 수사에 공들여온 검찰 입장을 감안한 것”이라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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